엄마 제사

엄마 제사여서 동생이 와
서래원에서 밥을 먹는데,
서래원 이모가 엄마가 살아 생전 자기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너무 커
지금도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며 우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
이것만 봐도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커가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생긴 것도 엄마를 더 닮았고,
성격도 엄마를 닮았다.
눈물이 많은 것도.

엄마가 떠난지도 벌써 7년이 넘어간다.
아직도 엄마만 생각하며 심장을 누가 쥐어비트는 것 같다.

엄마 사진 보며 울고
잠든 아이 얼굴 보며 울고
밤에 음악 듣다 엄마 생각나서 운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엄마 심정을 생각한다.
하느님이 나의 삶 십년과 엄마와 하루를 바꿔준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IVP 추억

보라 덧글 달 다 IVP 시절 생각이 난다.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이상하게도 첫사랑을 만나 IVP에서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에서 사랑과 신앙의 가장 큰 변곡점이었던
스물 한살

참 이상한 것이 IVP는 이성교제를 못하게 한다.
이것 때문에 첫사랑과 결국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

눈에 보이는 그 강렬한 에로스적인 사랑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총체인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을 보내고
인생의 가장 심연에서 심해어처럼 몸부림 치다
삶과 죽음의 고비에 서 있다고 고백하던 때
하느님을 다시 만났다.

이전의 나는
사라지고
한층 성숙한 나를.

그때부터 외로움에 곁을 내주고
부디끼며 살게 되었다.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독재, 효율성

스탈린 등소평 박정희
모두 파이를 키웠다는 공이 있다,

인민을 갈아만든 파이.
그 파이가 달콤하다는 싸이코패스도 있다.

경제발전에 독재의 효율성을 인정한다고
그게 옳다고 말하는 건 인간의 기본이 안된 사람,

독재가 달콤한 것은
그것이 나와 관련이 없으며
지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