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묻어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온 삶에 대한 문제. 회사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얼굴은 노인의 얼굴. 노인의 얼굴에는 긴 세월이 묻어 있다. 그 긴 세월의 고난함을 말해주는 얼굴이 대부분이다.

가난이 사람의 정신만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육체까지 침범한다. 가난 앞에 고결한 얼굴을 지닌 사람은 어떤 면에서 위대한 사람이다. 초인과 같은 삶의 자세 없이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매일 다른 얼굴을 보며, 매일 다른 삶을 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2016년 5월의 어느 날…

생리대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여학생
지하철에 치여 세상을 떠난 19살 남자 아이.
화장실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어느 젊은 여인
바다속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가습기 튼 죄로 죽어간 죄없는 아이와 사람들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사람들의 죄는
국가를 믿은 것과 돈이 없다는 것 뿐이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넘기고
나의 짐을 대신하게 한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기분
나만 생각하고 산 죄가 이렇게 크다
내가 사람이라면 이 것을 기억하는 것을 충분할까…

고민이 없던 때가 어디 있었냐마는…

회사를 다니면서 잃어버린 가장 큰 감정은 기쁨이다. 기쁨을 잃어버린 삶으로 성당에 나갈 때마다 기쁨은 신앙의 결과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밀려와 신앙에 대한 회의감까지 밀려온다. 늘 하는 생각.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일에 대한 기쁨은 바라지도 않지만 일에 대한 염증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 경직되고 수직계열화된 조직문화. 자유분방한 나에게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평소에도 쓸데없는 생각과 몽상이 잦은 나에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잘 어울릴 수는 없는 법. 수직계열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회사를 다니면서 몸에 베이게 알게 되었다. 사람을 수직으로 세워놓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태를 보고 있자니, 이 사회가 정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손가락질 해도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생각이 깊어만 간다. 회사를 오래 다닐 생각도 없고 애사심도 없는 사람인지라 회사에 미련은 없는데, 그만두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면… 남들처럼 답이 없다. 매달 나오는 월급이 급식처럼 사람을 길들이니까… 길들여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지.

길들여져 살아야 할지, 거부하고 광야로 나가야 할지. 일단 참아야겠지. 늘 그러했듯이… 뛰쳐나갈 용기가 없는 나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