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 오래된 전통과 모순, 그러나…

그들 삶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유럽에서 탄생했지만 이제 유럽에는 없고 미국에만 존재하는 기독교 분파로 이름은 아미쉬라고 부른다. 스위스의 재침례파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고, 메노파와 비슷하지만 그들보다 더 원리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오늘 날 미국에서 아미쉬와 그래도 교류하는 사람은 메노파밖에 없을 것 이다. 

오래전에 보았던 아미쉬 다큐를 보고 흥미를 갖아고, 녹색평론 과월호를 보면서 이들 삶의 양식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들은 21세기를 살아가지만, 17세기 전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일례로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전화도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다. 그러니 자동차는 꿈도 꾸지 않는다. 오직 이들의 이동 수단은 마차.

녹색평론은 이들 삶이 지닌 고유한 전통과 장점에 대해서 말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치로도 증명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20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사라질거라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그들의 수는 2배로 증가하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근대적 삶을 살아가는데, 그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들 삶이 가진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근본적인 종교적 전통에 얽매여 구시대 일상을 답습하는 그들의 삶을 유지하는 근본적 동력은, 가족, 나아가 공동체 정신이다. 이들에게 있어 한 마을은 가족의 확장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아미쉬가 된다는 것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이 일상에 스며든 사람들의 집합이다. 다른 그 어떤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양대 기둥이 바로 신앙과 가족, 이 둘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삶과 단순한 원칙을 고집하고 그 단순함대로 살아간다.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다큐에서 본 이들의 삶은 종교가 아니라 마치 우상을 믿는 것 같았다. 이들은 검은색 마차만 몰아야 하고, 마차의 모든 장식과 격식은 정해친 마을 장로들의 규칙을 벗어날 수 없다. 마차의 외관만이 아니라, 남자는 유대인처럼 수염을 길러야 하고 이들의 모든 복식은 어두운 단색계통뿐이다. 다큐에서의 아미쉬는 전기를 사용하지만 전기조차 거부하고 사용하지 않는 아미쉬도 있다. 이들에게 문명은 악의 근원이고 가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씨앗이다. 때문에 전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전화는 집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 심지어 아미쉬 남자는 의무적으로 멜빵을 메어야 하는데, 멜빵을 메는 방식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일상의 소소한 것까지 종교적 규율로 규제가 아니라 강제하는 이들의 종교적 일상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우상에 가까워 보였다. 같은 기독교 신자의 관점에서 이들이 문명을 거부하는 것이 답답한 것이 아니라, 왜라는 물음도 꺼낼 수 없는 그들의 종교적 삶이 답답하였다. 이들은 왜라는 물음을 죄악시 하는 삶을 일상에서 강요하고 그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왜라는 물음은 공동체에서의 추방과도 같은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째서 멜빵을 그렇게 메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그저 전통이니까 당연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신앙을 일상의 제 1 작동원리로 이해하면서도 이들은 성경을 읽을 줄 모른다. 초등교육만 받은 실력으로 성경을 읽는 것도 어렵겠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이 읽는 성경은 17세기 독일어로 씌어졌다. 선조들이 유럽에서 이주하면서 가져온 그 성경을 글자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수백년전 언어, 그것도 이제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인 독일어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이 이들에게 결코 쉬울 수는 없다. 이들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뜻도 모르고 그냥 읖는 것일 뿐이다.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그들이 벗어나려 노력한 로마 가톨릭의 삶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 장로들에 의해 유지되는 규율을 위반하면 공동체에서 쫓겨난다. 수백년전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현대 사회에 편입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어찌보면 공포 아닌 공포가 아미쉬 공동체를 강제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장점이 가장 큰 단점이듯이 아미쉬를 가능하게 하는 신앙과 공동체는 아미쉬의 핵심이자 장점이면서 아미쉬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내가 아미쉬에 대해서 단점을 열거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삶의 방식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는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유지하는 근본이 뭔지도 모르고 따르는 것이 좀 답답해 보였을 뿐이다. 

내가 아미쉬 삶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가장 큰 단점이면서도 그들의 삶의 핵심인 공동체 의식때문이다. 아미쉬는 가족을 신앙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을 공동체를 그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 생각한다. 때문에 마을 구성원 한 사람의 고통은 모든 사람의 고통이고, 한 사람의 경사는 마을의 경사다. 마을의 큰 공사는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고,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마을 전체가 짊어진다. 실제로도 아미쉬 가정의 아이가 중병에 걸려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나왔는데, 그 치료비는 마을 공동체 전부가 같이 부담하고 짊어진 사례가 있다. 물신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들의 이 모습은 아름답다는 의미를 넘어 숭고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구시대적 삶의 방식으로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원시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들의 공동체 정신으로 보호되고, 현대적 삶의 장점마저 능가하려 한다. 이들의 공동체 정신이 보여주는 장점은 현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이고 또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모습이다. 공동체 정신이 무너진 사회는 무너져 내리는 사회다. 그건 문명이고 과학도 해결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람 본연의 운명과도 같다. 사람은 모여산다고 해서 그것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라는 마음이 사라진 사람들의 무리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남남으로 결정된 개개인의 집합에 불과하다. 공동체는 물과 같아서 1+1=2 가 아니라 1+1=1 로 정의할 수 있다. 물방울 2개는 모여 하나의 더 큰 물방울을 이루는 것 처럼 공동체는 유기적인 개개인의 연대의식으로 뭉쳐진 모두가 하나인 집합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모순으로 뭉쳐진 그 전근대적인 삶의 방식이 현대인인 나의 부러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인류 모두가 살아온 과거의 전통,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이다. 아미쉬는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린 인류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이라고 장점만 지닌 것은 결코 아니다. 아미쉬의 그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이라는 이 위대한 전통이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전통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현대의 느닷없는 전통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이 우리를 기상이변이라는 우리를 생존까지 위협하는 극단적인 위기의 원인이다. 물질은 편리를 넘어 사람의 생각까지 변하게 만들 수 있는 무섭고도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물질의 거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정신이다. 그것을 아미쉬는 보여준다. 아미쉬의 현대적인 의미는 구경거리로 전락한 그들의 구시대적 삶의 양식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그들의 공동체 의식이다. ‘함께’라는 생각은 언제나 견고하고 편안한 품속이다. ‘나’라는 생각은 자유롭지만, 위험한  품속인 것이고. 
한 때는 우리의 전통이기도 한데,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우리의 정신은 이미 돈에 물들어 버렸다. 돈과 함께라는 마음은 함께 어울리기 힘들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비유하셨다. 이는 바꿔 말해 돈을 손에 쥐고서 누구와 가족이 되기는 바늘 귀를 통과하는 낙타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이 함께라는 그 따스한 마음을 기억하고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급행열차를 갈망한다. 난 그것이 파멸의 급행열차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이 발전과 진보의 열차라고 생각한다. 생각차 만큼이나 가는 길도 다르고 결과도 다를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방식은 우리 후손까지 갈 것도 없는 지옥행 급행열차라고 생각한다. 

아미쉬, 오래된 전통과 모순, 그러나…”에 대한 4개의 생각

  1.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618 => 왠지는 모르겠으나, 딱 이 영화가 떠오르더라고요. ㄷㄷㄷ~

    물론 전통 좋지요~ 허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방식 역시 추천할만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단폐쇄성이 높고 앎에 대해 그리 팍팍하다면 아이고야……;; 그 사람들의 몇몇 전통방식은 존중할만하고 특히나 음식 및 자연주의적인 면에서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아미시 교도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안드네요(가끔 물건 구입하고 관광가면 모를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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