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을 읽으며

잠들기 전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는다. 나는 왜 쓰는가. 책의 제목이며 책속에 나온 자전적인 에세이의 제목이다. 오웰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감지한 것처럼 운명이었다. 그렇다고 어려서부터 비범한 재능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재주가 있는 정도?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똑똑한 탓에 이튼에 입학하게 되고 졸업후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대신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생활을 5년동안 경험한다. 그리고 귀국해 노숙자 생활, 르포 탐사,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하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오웰은 작가로서 갖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체화하게 된다. 그것은 현상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성찰이다. 오웰의 문체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큰 매력이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오웰이 거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을 뿐더러, 오웰 스스로가 언급한 것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추구한데서 찾을 수 있다.

오웰 스스로가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추구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맞물려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식민지, 세계 1,2차 대전의 한 복판에 놓여있었다. 발전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 폭력이 양산한 시대의 모순. 어찌보면 그 시대는20세기 최고의 격동의 시기였다. 그런 시대를 살며 냉철한 시각으로 시대를 읽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대의 그 유명한 작가 명사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하려 한다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기자 라디오 피디 활동중에도 오웰은 굉장히 많은 에세이를 썼다. 사실 오웰 문학의 정수는 동물농장이나 1984보다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먹고 살기위해서, 또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여러 이유로 오웰은 글을 썼다. 오웰은 자신이 쓴 에세이들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당위성을 찾고자 했다. 잡문으로 비하되는 이 장르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도 묻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과정인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한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그래서 오웰은 스스로에게 대중에게 솔직하고자 했다. 그의 글에는 냉소와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지금도 틀리지 않는 그의 정확한 시선. 그의 칼이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함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깨어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오웰처럼.

더 랍스터

날벼락이 내려 바이러스성 피부 발작이 일어나 온몸이 발진이 일어나더니 얼굴까지 번져 빨간얼굴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일주일이면 낫는다는데 괴롭구나
십수년만에 감기도 걸리고
이런 피부질환도 앓고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보다

등에도 약을 발라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는다
영화 랍스터의 콜린 파렐이 떠올랐다
그도 등의 피부병때문에 약을 바르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제 깨닫으니
사람은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야 한다는 은유였다
랍스터가 되기 싫으면…

시골의사 박경철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의사라는 본업보다 주식투자로 성공한 경제전문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어려서부터 방대한 독서량으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았고 본업인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도 얼치기 경제 전문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분. 모두가 환호 할 때 버블을 경고했고, 모두가 두려워 할 때 투자를 권했던 버핏과 같은 현인?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개인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런 성취를 바탕으로 티비에 자주 등장하며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설파하고 안철수와 함께 토크 콘서트로 온 국민의 열망을 받았던 그런 분. 그 때 만해도 안철수는 새정치의 상징이고 이 분은 젊은이의 멘토로 새로운 세상을 열 것만 같았다.

정치에 입문한 후 안철수의 말도 안되는 행보속에 이분의 입김이 강하게 묻어난다는 풍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안철수의 행보는 안드로메다로 가기 시작한다. 급기하는 새정치라는 이름의 땡깡정치 열게 된다.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제재,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주장하더니 얼마 뒤에는 5대 중범죄만 아니면 누구나 출마가 가능한 오픈프라이머리에 사인을 한다. 왜냐고 물으니 혁신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혁신의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더니 싫다고. 추천을 해달라고 하니 묵묵부답. 이제는 더 나아가 새정치를 넘는 혁신정치를 추구하신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선출된 정당한 대표도 혁신 전대로 다시 뽑아야 하고, 혁신정치를 위해서는 호남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행보를 보인다. 말은 없지만 행보는 호남당으로의 회귀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광주에 가셔서 기자회견을 하신다. 혁신 정치, 혁신 후보, 혁신 전대… 혁신의 혁신을 보이는 정치를 열어놓는다.

안철수와 같이 정치를 시작한 사람중, 지금 안철수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윤여준은 결국 안철수에게 악담을 퍼 붙고 떠났고, 금태섭 변호사는 소위 안철수 캠프라는 곳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 얼마나 답답했는지 책에다 써놓았다.

그런데 떠나는 사람의 입에는 늘 시골의사가 따라다닌다. 이것이 우연일까? 국회의원 100명으로 줄이자는 이 희대의 발상이 시골의사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말이 들린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만권의 독서를 통해서 쌓아올렸다는 그의 성찰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1만여권의 책과 함께한 그 긴 시간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정치의 개혁을 위해서는 민의가 반영되는 선거구제의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해방 당시시 인구수에 맞춰 선출한 국회의원수를 시대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이 순리다. 민의의 왜곡이 불러일으킨 정치의 기형화, 그 기형화에 지역구도는 안주하고 분산되지 않는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서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기존의 구조에 안주하려 한다. 이것이 호남정치로 대변되는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의 비열한 사고방식이다.

조금만 시대를 읽고 생각을 펼쳐놓으면 국회의원 수를 늘려 권력을 분산하고 그 권력의 분산만큼 비용 또한 같이 절감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해하게 된다. 권력의 독점이 낳은 폐해의 본질, 그 본질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이 1만권의 책으로 쌓여올려졌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허무한 노릇인가. 시골의사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경제적인 혜안 또한 정치의 본질과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들게된다. 성공한 사업가 안철수 문국현이 가져 다 준 야당의 시련을 봐도, 또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지만 성공으로 포장하여 거대한 사기를 친 이명박을 봐도. 이런 과정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사업가는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경제논리는 정치라는 거대한 삶의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