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다…

요즘 본 공연중에서 어떤 공연이 가장 좋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투란도트를 꼽았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볼만큼 감동하기도 했고, 무대도 가창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눈물을 쏟으며 감동하였다.

그럼에도 난 대전에서 관람한 복스 루미니스의 공연이 가장 좋았다. 투란도트처럼 화려한 볼거리와 투란도트가 부르는 그 강렬한 가창은 없었지만, 내밀하게 다가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던 공연.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감동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투란도트 공연을 보면서 관현악 반주를 뚫고 강렬하게 직진하던  이리나 바센코? Irina Bashenko 의 가창에 놀랐다. 투란도트 역이 얼마나 대단한 역량을 요하는 배역인지 이 날 관람을 통해서 실감 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테너 아리아 네순 도르마는 그냥 그랬지만 의외로 한국인 배역들이 모두 훌륭했다.

오페라 무대를 많이 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봤던 무대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았고 가창 반주 연기 또한 마찬가지. 이정도 오페라 무대를 처음보았기에 나나 아내나 많이 감동하며 본 것 같다.

다음 달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공연도 기대가 된다.

젊은 날의 아르헤리치

젊은 날의 아르헤리치는 참 거침이 없다. 여자 장비가 아닐까 싶네…
장비가 적토마 타고 신나게 달리는 기분…
그렇다고 대충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템포를 갖고 자유자재로 쥐락펴락 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재능이라는 것이 무섭구나 싶다.
똑같은 악보는 보는데 누구는 이렇게 탱글탱글 빛이 나니…

모차르트 레퀴엠, 쥐스마이어-듀트론 판본

쥐스마이어 판본에 가필을 하거나 수정을 가한 작품이 몇 있었지만, 기존 작품들은 쥐스마이어의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안티-쥐스마이어 진영의 대표적인 몬터판본은 쥐스마이어의 작품을 아예 들어내기 까지 했고, 그가 가필한 부분은 최대한 삭제하려 노력한 작품이다. 그 결과 모차르트 레퀴엠의 본령을 찾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이게 모차르트의 의도인지 아닌지가 더욱 불분명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차르트 생애 마지막을 함께 했고 레퀴엠의 작곡 과정을 지켜보고 결국 레퀴엠을 마무리한 쥐스마이어의 업적을 무시 할 수 없다. 사실 레퀴엠은 반은 쥐스마이어의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본령을 찾아가겠다는 의도는 어찌보면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모차르트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모차르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쥐스마이어이기 때문이다.

이번 쥐스마이어-듀트론 판본은 지금까지 내가 접한 모차르트 레퀴엠 음반중에서 가장 균형잡힌 판본이라고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을 취합하고 쥐스마이어에 대한 폄하에 빠진 판본들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뼈대는 쥐스마이어지만, 기존 판본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훌륭하게 수용했다. 레빈이나 몬더 판에서 느껴지는 모차르트 특유의 선율감각들이 절묘하게 흡수되었다. 때문에 쥐스마이어 판본이 갖고 있는 극적이고 비극적인 면들이 많이 걷히고 안티 쥐스마이어 판본들이 지향하는 모차르트 음악의 특징. 어찌보면 천상의 음악 같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울리는 면모들이 구석구석 녹아 있다.

라크리모사만 해도 기존의 쥐스마이어 판본과 많이 다르고 아멘의 극적인 면모도 자연스럽게 마무리 짓는다. 일단 뼈대는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쥐스마이어 판본의 장점을 거의 대부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오케스트레이션은 상당부분 미묘한 수정을 거쳤다. 이 둘의 조화가 자연스럽다.

연주는 야곱스 음반답게 템포가 상당히 유동적이고 음악자체도 역동적이다. 지루할 틈이 없다. 여러가지 면에서 쥐스마이어 판본의 대표작인 윌리엄 크리스티 음반과 더불어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다.

크리스티 음반은 기존의 무겁고 낭망주의에 경도된 쥐스마이어 판본 연주들 사이에서 해석만으로 쥐스마이어 판본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드러낸 음반이라면 이번 야곱스 음반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물이 응집된 힘이 해석과 더불어 좋은 결과를 낳았다 .

슈페링이나 호그우드의 레퀴엠이 지니지 못한 레퀴엠이라는 곡이 가진 비극성을 살리면서도 그 비극석에 매몰되지 않는 중용을 지녔다. 이는 상당부분 야곱스의 취향과 잘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태수난곡에서 그랬지만, 야곱스의 템포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