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눈으로 밤을 밝히면서 옆에 바흐의 파르티타를 놓아두었다. 연주자는 글렌 굴드.
예전에는 이 음반을 들으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제의 감동은 신선했다.
내게도 글렌 굴드의 파르티타가 이렇게 다가올 줄이야. 자의식에 똘똘 뭉쳐 내 목소리만 내던 굴드의 노래를 그제 비로소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차드 구드의 아름다웠던 파르티타도 기억에 남지만, 수묵화처럼 담백한 글렌의 연주은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바흐 생전에 출판된 공식 작품 번호 1번의 영예를 가지고 있는 파르티타는 1731년 “클라비어 연습곡집(Clavierubung book)” 제1부 작품1로서 세상에 나왔다. 겉표지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라고 바흐가 직접 써 놓았다고 하는데, 진위여부를 떠나서 지금의 내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구절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이미 많은 위로를 받았다. 300여년 전에 바흐는 쳄발로로 이곡을 연주했을테지만 300년 후의 나는 피아노로 이곡을 연주하고 피아노로 연주된 음반을 듣는다. 그 오래전 바흐가 쳄발로 앞에 앉아서 이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경건한 풍경보다는 웃음이 실실 흘러나오는 풍경이 그려진다. 쇼스타코비치처럼 심각한 모습이 아닌 살이 오른 얼굴에 포근한 몸매, 그리고 바흐를 떠올릴 때마다 그려지는 그 머리 모양이 나의 얼굴에 웃음을 그려낸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잭슨 파이브의 머리(뭐 정확한 모습은 아니지만)의 통통한 중년 아저씨가 그 섬세한 쳄발로를 두드리며 이 황홀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광경을 말이다.
파르티타는 이탈리아에서는 본디 변주곡을 가리켰다. 이 형식은 독일에서도 사용되어 코랄 파르티타라고 하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을 뜻했다. 또 17세기 말엽부터는 모음곡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프랑스 말(Partie)인 모음곡과 혼동되어 모음곡을 뜻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 곡은 바흐가 그다지 행복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라이프찌히 시대의 작품이다. 성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라는 자리가 꽤나 무겁고 억압하는 것들이 많은 자리였을 것 같은데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2권>이나 <골드베르크 변주곡>같은 건반 음악의 주옥같은 곡들이 쏟아졌고, 이 시기에 마태수난곡도 나왔고, 최후의 걸작들도 라이프니찌에서 쏟아졌으니 우리에게는 행복했던 시기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바흐가 남긴 3개의 모음곡 파르티타, 프랑스, 영국 모음곡 중에서 단연코 손이 먼저가는 곡은 파르티타이다. 사실 프랑스 모음곡이나 영국 모음곡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데, 그 영향은 로잘린 투렉 여사의 영향이다.
(로잘린 투렉 여사의 바흐 파르티타 음반, VAI)
바흐를 처음 접하던 시기에 투렉 여사의 파르티타 음반(VAI)을 듣고 사랑하는 음반이 무엇인가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다. 투렉 여사가 말년에 자신의 집에서 지인들을 모아놓고 연주했던 작은 음악회. 투렉 여사가 평생을 거쳐 추구하던 바흐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비록 그 자리에 없었지만 녹음으로 기록되어 우리 곁에 남아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건반 음악은 파르티타 오직 파르티타 뿐이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도 감히 파르티타의 위상에 근접하지 못한다. ^^
피아노로 연주되는 파르티타가 바흐가 추구했던 음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쳄발로 만큼 바흐에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할지라도 피아노로 연주되는 파르티타는 바흐 건반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역할에는 제 소임을 다 할 것이다.
글렌이 연주하는 파르티타에는 리듬이 살아있다. 글렌은 이 곡이 춤곡이었음을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흐가 사용했던 조곡 혹은 모음곡 대략적인 순서는 알레망드(Allemande) – 쿠랑트(Courante) – 사라방드(Sarabande) – XXX – 지그(Gigue) 순으로 이루어져있다. 모두 국적이 다른 춤곡들이다. 알레망드는 독일 클럽에서, 꾸랑뜨는 프랑스 클럽에서, 사라방드는 스페인 클럽에서 그리고 지그는 영국 클럽에서 건너왔다. 축구 클럽이 아니라 밤무대 디스코 고고 클럽이다. (XXX는 한 곡이 될 수도 있고 두 곡이 될 수도 있으며, 미뉴엣이나 아리아 등이 들어간다. 알레망드 앞에는 프랠류드, 신포니아, 판타지아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
글렌은 다국적 모음곡에 자신의 상표를 붙었다. 글렌 파르티타 주식회사 상품들이다. 글렌 주식회사 상품들에는 글렌표 춤곡 인증서가 붙어있다. 인증서에는 반드시 글렌 특유의 몰아치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유사상표 방지를 위한 글렌의 자구책인 셈이다.
글렌의 파르티타는 즐겁다. 무겁고 우울한 마음에 노크를 하며 한 마디 건내다. “지원씨 춤 한곡 추실까요?” 이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자기 맘대로 스텝을 밟는다.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니 저만치 떨어져 혼자서 열심히 스텝을 밟는 글렌을 바라봐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글렌의 파르티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투렉 여사의 파르티타가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라면 구드는 투명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글렌은 저만치 떨어저 이 춤 판을 바라볼 수 있게 판을 벌여준다.
글렌은 평생이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그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레코딩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전해지는 음반에 있지 않을까 싶다. 병이 옮을까봐 악수도 꺼려했던 글렌에게 음반은 전염의 염려도 없고, 상대방의 말도 안 들어어도 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잔뜩 쏟아낼 수 있었으니 그에게는 최상인 셈이다.
글렌의 춤판이 이제 다 끝났다. 내 글도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