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호와의 증인 아줌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남편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들어 수혈을 거부하였다. 꼭 수혈을 안해서는 아니겠지만 아내는 죽었다. 남겨진 남편은 신앙을 준수하였으니 천국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과연 아내가 천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일일까?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의 이단 분파로서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이단으로서는 그 교세가 큰 편에 속한다. 이들은 집총을 거부하며 수혈마저 거부하는 극단적인 교리를 주장한다. 이들의 집총 거부는 일제 시대에는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인정받았지만, 현대의 여호와 증인들은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이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교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 신념을 고수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들도 기성 기독교의 교인들처럼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이단과 정통을 나누는 것일까?
이단과 정통의 역사는 초기 기독교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재진행형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카톨릭을 제외하고 개신교가 태동하면서부터 이단의 역사는 불이 붙게 된다. 이단에게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이단은 이제 기존 교단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성장한다.
기성교단들의 부패와 타락속에서 이단들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건 이들이 정통 기독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어찌보면 미비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 삼위일체면 어떻고, 그것이 아니라면 또 어떠한가! 기성교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 꽤 많은 사람이 현혹되고 이들이 마치 정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기성교단들의 허물을 헤집고 들어오는 이단들의 놀라운 자생력과 열정은 분명 배울 점은 있지만, 그 끝이 어찌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단이 옳은지 기성교단이 옳은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성교단에서 이단이라 정죄하는 집단에 몸을 담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목숨을 도박판에 내던지는 일이다. 교회 밖 사람에게는 이단이면 어떻고 정통이면 뭐 어떻겠냐마는 적어도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에 뛰어들어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관용 하나가 온 집안을 불바다로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