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녹턴’ – 얼 와일드

쇼팽 녹턴이 솔직히 지겨워서 더이상 안사려고 하지만, 관심있는 피아니스트가 녹음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손이가게 된다. 폴리니의 녹턴또한 그러할 듯…

와일드는 지명도와는 달리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리스트의 제자인 유진 달베르의 제자, 셀머 얀슨, 파데레프스키의 제자인 파울 도게뢰, 부조니의 제자인 에곤 페트리, 러시아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시몬 바레레의 아내인 헬렌 바레레, 이시도르 필립의 제자이자 생상의 제자였던 볼랴 코사크의 제자… 이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얼 와일드이다.

나도 이전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The Art Of The Transcription 이라는 제목으로 오디오폰에서 나온 음반을 듣고 깜짝놀라서 관심을 갖게된 피아니스트이다.

필립스 20세기 피아니스트 시리즈의 음원과 동일한 소스이며,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소노리티를 가지고 있다.

첫곡을 듣는 순간부터 이것이 과연 100% 순수 라이브 공연에서 나오는 음향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음악이라는 것이 갈수록 짜집기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에서 최고의 음악이라는 것은 실연이고 오직 무대에서 연주자는 말을 해야한다는 고정불편의 진리를 일깨워준 피아니스트.

그가 올해 90세가 넘어간 피아니스트 얼 와일드이다. 수술후 90세 기념 투어와 동시에 기념음반을 발매하였는데, 이번에 아이보리 클래식에서 대거 수입된 그의 음반들을 거의 모두 구해서 들어보고 있다.

프랑스 작곡가 레이날도 한의 피아노를 위한 시곡 전곡과 같은 아주 휘귀한 레파토리는 물론 그의 본령이라고 볼 수 있는 리스트까지 다양한 음악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음반들이다. 만만한 것이 쇼팽이라고 녹턴을 듣는데, 독특한 감흥은 둘째 치더라도 변덕스러운 템포감각과 스타카토에 가까운 건조한 핑거링은 상당히 개성스럽다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가 연주하는 녹턴은 기존의 명반의 대열에서 빠질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악보에는 얽힌 연주, 기존의 인습의 틀에 갇힌 연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피아노도 흔한 스타인웨이가 아닌 볼드윈 피아노 이다. 볼드윈 피아노마다 다르겠지만 음반에서 들리는 볼드윈 피아노 소리는 스타인웨이의 화사한 음색보다는 수묵화에 가까운 텁텁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피아노 음향이 쇼팽의 녹턴에 가장 어울리는 피아노 음색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은 자유롭지만 아름답고 개성있지만 모범적인 연주이다.

곡의 배열부터가 와일드 자신의 임의적인 순서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곡에 몰입할 수 있는 배열의 묘[妙]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음반은 첫째 시디보다 둘째 시디로 갈수록 곡에 몰입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지는 다른 녹턴 음반들에 비해서 자유롭지만 아름답다는 모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음반이다.

백세에 가까운 나이에 이런 음반들을 쏟아내는 살아있는 전설…
그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피아니스트 얼 와이드이다.

쇼팽 ‘녹턴’ – 얼 와일드”에 대한 2개의 생각

  1. 최근 구한 하비 샤피로의 라흐 첼로 소나타 음반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네요. 연주가 범상치 않아 지명도가 높지 않다는것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있단 말입니까…

  2. 아쉽게도 올해 돌아가셨어요.
    100세를 못 채우고 돌아가셨네요.
    90세가 넘도록 현역으로 활동한 대단한 피아니스트죠.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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