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 2       이오덕 씀



정우가 저녁에 와서 말했다


권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이렇게 말해요


아버지 밥 못 잡수신다고 하거든


좀 야단쳐.


죽은 먹어도 헛거야


약이고 주사고 다 소용없어.


밥 안 먹으면 안 돼.


나도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하고


그래도 죽기살기로 먹었어.


한 숟깔 떠 넣고, 오백 번 씹으면


죽보다 더 잘 넘어가


어떻게 해서라도 밥 드시도록 해.


그랬어요.


정우 말 듣고 눈물이 났다.


권 선생이 지금까지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줄 몰랐다.


 


2003. 6. 17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가운데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1)


 


                        권정생


 


             주중식한테서 소포 하나가 왔다.


             끌러보니 조그만 종이상자에 과자가 들었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가 아니고 집에서 만든 것 같다.


             소포에다 폭탄도 넣어 보냈다는데


             잠깐 동안 주중식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했다.


             십 년이 넘도록 알고 지냈지만 원한 살 일은 없는 것 같다.


             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니 아무렇지 않다.


             좀더 큰 것을 집어 먹어봐도 괜찮다.


             한 개를 다 먹고 다섯 시간 지나도 안 죽는다.


             겨우 마음이 놓인다.


             주중식과 나 사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돈독함이 확인되었다.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2)


                                            권정생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학년인 도모꼬가


              일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것은 없다


 


하나님도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달팽이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미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 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 간다


 


달팽이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게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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