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 9일이면 한글날을 맞아 우리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뽐내는 수많은 글들이 언론 지면을 장식한다. 사실 한글의 과학성은 이미 공인된 것이다. 한글의 제자 원리는 탁월하다. 특히 조음 기관을 본떴다는 닿소리 글자들은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추가되는 음운 자질을 드러냄으로써, 로마 글자 같은 음소 문자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간 ‘음운 자질 문자’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이 다른 언어들에 비해 대단히 최근에 ‘창제’된 글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의 ‘가나(假名)’보다는 6백년, 로마 글자보다는 무려 2천년 뒤에 등장한 것이다. 고종석의 말처럼 그 2천년 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이 한글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한글이 갖는 과학적 우수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한글이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창제된 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고, 20세기 전반기에는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활용의 기회를 놓쳤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번역을 통한 양질의 한글 텍스트 확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일본과 견주어 짧게 잡아도 100년 이상을 뒤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앞길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만 단편적, 지엽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아서는 여전히 번역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글을 언어학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공용화론이 나온 배경 중에는 영어로 씌어진 막대한 양의 지식, 정보도 큰 몫을 했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한 언어들로 작성된 양질의 텍스트들을 우리 한글로 번역해낼 경우 우리 모국어의 컨텐츠는 얼마나 풍부해질 것인가? 번역이야말로 영어공용화론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번역은 반역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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