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자로서 대략 5년, 천주교인으로서 대략 5년, 개신교인으로 10년,
살아오면서 느끼는 점이 이 나라의 개신교가 이제는 회복불능의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목사님 추천 받아 토라교회라는 곳을 다녔을 때, 그곳 목회자이신 송제근 목사님의 열정과 설교에 상당한 감화를 받았다. 비록 노무현이 빨갱이라느니, 전라도 사람들은 다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내게 직접 했어도 그 정도 흠은 눈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흠 없는 사람을 찾는 바보가 아니라면 그 사람이 향하는 곳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 청년들에게 있었다. 좌파 빨갱이 열린우리당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며, 한나라당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서 이 나라에 내일이 없고, 개신교에 내일이 없는 것이다. 바른 소리때문에 교단과 학교에서 쫓겨난 송제근 교수님이 세운 토라 교회와 토라 사관학교. 참 대단한 열정과 신앙의 신념으로 모인 사람들인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구약의 시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 백성들 같다. 만인을 통치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닌, 우리들의 하나님 말이다.
개신교 내에서 이단 소리도 조금 듣고, 굉장히 개혁적이라는 분들이 모여 만든 집단도 저렇다. 하물며 조용기 목사나 오정현 목사같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목회하는 교회는 사정이 저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듯 싶다.
내가 모르몬교에 잠시 미쳐서 헤매다 정신 차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갔을 때, 개신교회가 아닌 천주교회로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내 신앙의 밑바닥을 다져놓았고, 그것이 나중에 거듭나는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내가 천주교회를 나갔을 때, 한국 천주교인 수가 2백만이었다. 그런데 십수년이 지나고 난 지금의 천주교인은 5백만이라고 한다. 개신교는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신자수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모양새고, 그나마 대형교회에 모인 신자들도 새신자라기 보다는 이곳 저곳 중,소 교회에서 빨아들인 수평이동 교인들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개신교인이나 천주교인이나 같은 하나님을 믿고 그들의 신앙이며 삶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이점은 웃음과 눈물의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목사님 되었다고 눈물 흘리는 가족이나 목사님을 본 적이 없다. 목사님이 되었다는 것은 축하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부,수사,수녀님이 된다고 하면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 수도원에 들어갈 때 한 번 울고, 종신서원 할 때 또 한 번 운다. 똑같은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대리자들인데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운다.
능력의 차이도 아니고, 그들의 신앙의 높고낮음도 아니다. 그 가는 길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해주는 증표인 것이다.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한다면 주변에서 말려야 한다. 주님을 향해 걷는 그 길은 세상에서 가르치고 원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축하하고 격려가는 그 길이 나쁘다 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다만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모두 함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왜 개신교에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환한 웃음과 대책없는 기복신앙만이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