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러시아 태생 노인네의 연주에 넋이 나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얼굴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인데, 연주는 꽃처럼 피어나는 소녀의 연주다. 낭만적이고,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며, 음색은 맑고 섬세하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런 연주를 남겼다. 이 연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82년 실황 음반이다. 이 날 연주회에서 체르카스키는 륄리 부터 쇼팽, 차이코푸스키까지 폭 넓은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물론 륄리의 곡은 고음악에 속하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에 대한 찬,반 논쟁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노인네 앞에서 그런 논쟁은 결례일 뿐이다.
마지막 낭만주의자라고 불리는 체르카스키의 음악을 논할 때면 그의 기가막힌 루바토를 빼놓을 수가 없다. BBC에서 발매된 쇼팽 리사이틀 실황에서 보여주는 루바토는 그야말로 숨이 넘어가는 듯 하다. 다음 타건을 기다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이 두근거린다고 할까? 그 음반을 듣고나서 난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보 속에 있는 것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젊은 연주자가 그의 루바토를 어설프게 흉내내다가는 음악을 망치기 쉽다. 체르카프스키의 루바토는 1911년에 태어난 이 노인네가 평생을 거쳐 몸으로 체화한 음악의 한 언어이다. 이 언어는 아주 예민하고 상처받기 쉽다. 체르카스키가 만년에 만들어내는 음악처럼 말이다.
체르카스키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언어는 음악이다. 그가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서 음악 이상의 것을 뽑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이 이 늙은 연주자의 진정한 면모이자, 평생을 거쳐 이 늙은이가 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만들어 냈을 음악의 참 모습이다. 한 음악이 10년을 살아남기도 힘들지만, 그는 그의 음악으로 거의 한세기를 살아남았다. 지금은 죽고 그의 녹음들만이 남아있지만, 체르카스키 그의 이름은 전설이라는 호칭이 전혀 아깝지 않다.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youtube.com에서 Cherkassky로 검색하면 1995년도 도쿄 리사이틀 영상이 있습니다.
진짜 대단한 분이시죠. 1995년도 리사이틀이면, Cherkassky옹이 타계한 해인데… 어후…
와. 그런 기록이 유투브에 올라왔군요.
세상에 죽기 직전까지 현역생활을 하셨군요.
더욱 놀랐습니다.
아무리 거장이라도 최후까지 현역으로 남기 힘든데 말이에요.
체르카스키는 역시 전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