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큰 어린이, 권정생

사용자 삽입 이미지입력: 2008년 05월 15일 17:47:35
 
동화작가 권정생. 어느 12월 눈 내리는 날, 이화령을 넘어 그를 찾아갔다. 안동군 일직리 조탑동. 그의 집은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산과 붙어 있었다. 한 평 남짓 크기의 방은 그 누구와도 동거할 수 없었다. 벽에는 초상화 하나만 걸려 있었다. 농민의 세상을 꿈꾸었던 전봉준이었다. 그는 폐결핵, 신장결핵, 늑막염을 한꺼번에 앓고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이미 한국전쟁이 터지고 정처없이 떠돌던 19살 때 폐병에 걸렸다. 마을 친구 열댓명은 폐병으로 땅에 묻혔다. 너무나 배가 고팠다. 스물여덟살 되던 해에 집을 나와 구걸로 연명했다. 허드렛일은 안해 본 것이 없었다. 저녁이면 자살을 결심했고 아침이 오면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는 매일 아팠다. 교회 종지기를 하며 글을 썼다. 그의 동화는 슬프다. 앉은뱅이 아줌마, 매 맞는 할미소, 미쳐버린 어머니, 잡혀죽는 양, 다리 저는 소녀, 못생긴 할머니….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약하고 불쌍하고 기구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노와 복수심이 없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동심으로 ‘잔인한 세상’을 지켜봤고, 그후 한 번도 어른 흉내를 내지 않았다. 구박받고 천대받는 아이에 머물렀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따스함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오직 어머니 품이었다. 그에게 소망 같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죽어서 가고 싶은 세상은 어디일까. 먼저 간 어머니가 사시는 그 나라는 어디일까.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무서운 포탄이 없을까/총칼 든 군대들이 없을까/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아아, 거기엔 배고프지 않았으면/너무 많이 고달프지 않았으면/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내일(17일)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된다. 그가 남긴 책들은 여전히 동심을 적시고 있다. 평생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모든 인세는 자신의 책을 읽어준 아이들의 것이니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어린이, 권정생은 아마 어머니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5월은 심란하다. 아이들 세상이 아니라서, 권정생은 아직도 아플 것이다.


<김택근 논설위원>

출처 : 경향신문 2008년 5월 15일 인터넷 기사,
     



아직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시리다.
선생님이 안 계신 하늘이 참 슬프게 파랗다.

[여적] 큰 어린이, 권정생”에 대한 2개의 생각

  1. 권정생 선생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린시절 몽실언니를 읽고 팬이되었지요. 작년에 신문에서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2. 저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또 좋아해요. ^^
    제 삶의 기둥같은 분이에요.
    선생님을 기억해주고 반가워하는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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