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이명박

사실 대통령이라고 부르기 싶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백 날 촛불을 들고 물대포를 맞아가며 거리에서 목청껏 부르짖어도 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이 정권이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는 까닭은, 이들이 시행하려는 정책이 시민의 지지를 받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짜피 반발은 그치지 않으테니, 초반부터 싹수를 잘라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어찌보면 소고기는 임기중 언제고 터져야할 뇌관을 앞당긴 것일 뿐이다.

요즘 촛불에 대한 염려와 우려도 많은데,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함석헌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모세가 멍청한 유대인때문에 정작 본인은 고생만 실컷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민족을 이끌고 혼자서 삽질만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이것이 아니다. 그 멍청한 민족을 버릴 수 없어서 끝까지 그들과 함께 했다는 그 사실이 바로 모세의 삶에 대한 본질이고, 그것이 그가 성공했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지도자는 모세와 같아야 한다. 대중이 소고기를 잘 몰라서 촛불들고 밤거리를 헤멜 수도 있다. 만약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도 몽둥이로 후려 치는 것이 지도자 덕목은 아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그 무식한 대중을 끝까지 부디끼며 껴안는 것이다. 일단은 껴안고 바른 길로 나아갸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이라는 절대 진리 앞에서도 그 길을 거부하는 자신의 민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것 처럼. 지도자는 모세와 같아야 한다. 모세는 결국에 민족의 가나안 입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마 그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함석헌 선생님과 모세를 같이 떠올리는 까닭은 선생님의 길이 모세의 길과 같았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그가 여느 지식인과 다른 점은 그는 백성을 하나님으로 우러러 보았다.

무식하고 자기 이익만 좇는 승냥이 같이 비열한 놈들이라 민중을 욕할 때, 함석헌은 못나고 못배우고 무식해서 위대한 것이 민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평생을 살았다.

같이 부디끼면서 때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적도 있었고, 하나님께 이 우두한 민중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느리고 변할 것 같지 않지만 결국에 전진하고 변화하는 것이 민중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관동대지진의 현장에서 조선 사람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그 참혹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그는 지배계층의 획책으로 칼을 든 평범한 일본 사람을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았다. 지배층의 잘못과 민중의 허물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지옥에서 살아남아 비폭력 평화주의를 꽃피웠다.

비폭력은 지금은 패배하고, 당하기만 하는 것 인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에 승리하고 진실로 남는 것은 비폭력이다.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다. 물대포를 쏘고 망방이로 사람을 후려치고, 방패로 찍어내도, 끝까지 돌을 들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으로 짖밟는 이 부당한 권력앞에서 함선생님처럼 냉철해져야 한다. 방패로 내리찍는 전경 너머의 권력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

권력은 한 때의 꽃과 같아 오래가지 못한다. 참고 견디면 꽃을 시들고 떨어진다. 하지만 독을 품은 저 가열한 꽃을 잊지말아야 한다. 머리속에 각인시켜두고 평화라는 불꽃으로 저 독소를 불태워야 한다.

때리면 맞고, 발로 밟으면 짖밟혀주자. 나를 때리고 짖밟는 전경의 얼굴은 잊어버리자. 하지만 그 전경의 얼굴 너머 이 악랄한 권력은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 우리의 마음의 평화라는 불꽃을 심어두자. 그리고 이 불꽃으로 반드시 이 권력을 응징해야 한다.

잊지 말자 평화를…
그리고 이 권력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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