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본당 주임 신부님은 경우 강론중에는 일체의 정치적인 언급을 안하시지만, 미사후 공지사항을 말씀하실 때 집에가서 쥐코를 꼭 찾아보라 당부하는 센스를 지닌 분이다. 이런 성당의 분위기에 익숙하고 이런 지역 사회 분위기에 익숙한 내가 가톨릭이라는 전체를 놓고 교회를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버스 터미날에서 티브를 보다 나도 모르게 2mb 욕이 튀어 나오면 주변에서 돌아오는 것은 야유가 아닌 맞장구. 이런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가톨릭 교회 전체는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평생의 훌룡한 삶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보수적인 발언을 쏟아냈던 것도 이런 가톨릭 교회의 보수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낙현 성공회 신부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의 천주교의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촛불 집회가 탄압으로 사그라들 때, 거리로 나서 시민을 지키고 꺼져가는 촛불을 되살린 것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힘이었다. 덕분에 주변에서도 신부님들에 대한 감동을 쏟아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사제단 신부님들이 보이지 않는 교회의 탄압을 받고 있다. 교회는 정상적인 절차라 하지만, 이걸 믿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독재와 정면으로 대항했던 지학순 주교님과 같은 천주교 고위 성직자는 이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시선은 긍정이 아닌 부정이다. 교회의 급격한 보수화가 바로 그 원인이라 생각한다. 단적인 예가, 과거 명동성당은 쫒기는 누구나 찾아가 기댈수 있는 안식처였지만, 이제는 신도만 반기는 사기업의 모습이다.
500백만이 넘는 신도수로 교세가 급격히 성장한 가장 큰 배경도 사회에서 비춰진 천주교회의 모습이 다른 종교에 비해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교회의 덩치가 커지면 늘 발생하는 문제, 신앙의 질이 떨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500백만이라는 신도수에 비교해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도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급격하게 보수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신부는 목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 권위를 지닌다. 목사에게 고해성사의 권리는 없지만 신부에게는 고해성사의 권리가 있다. 이는 교단의 교리의 문제를 떠나 신부라는 직함이 개신교회 목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리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성직자들도 사람이다. 그래서 그 고귀할 것만 같은 곳에서도 암투가 벌어지고 알력싸움이 보이지 않게 일어난다. 일단 교회의 지도자들이 보수화되면 보수적인 신부님만이 교회의 지도자로 진출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아닌가. 그 다음에 예상하는 결과는 뻔하다. 천주교도 개신교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 그 양태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타락하고 쇄락하는 면모는 다를 것이 없다.
종교의 속성상 교인이 보수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동성애, 낙태등 논란이 많은 현안에서도 기독교인이 취해야할 입장은 딱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도덕적 보수성이 정치적 보수성으로 연결되면 곤란하다. 도덕적 보수성은 개개인의 삶의 건강을 지켜주지만 정치적 보수성은 교회 전체의 건강을 좀 먹는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면서 사회의 약자와 소외받는 이를 위한다는 말이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게 들리는가. 교회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면 급격히 기득권에 편입되고, 교회 자체의 부패와 타락이 시작한다. 역사를 통틀어 단 한번도 이 진리에서 교회가 벗어난 적은 없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교분리를 넘어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단순히 물리적인 장벽으로 분리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도 그곳과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몸은 교회에 있으면서 마음은 정치를 탐하는 이중격 삶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사실 정진석 추기경의 보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 넓게 보면 지금의 가톨릭 교회 교황은 가장 극렬한 보수주의자 중의 한명이다. 이런 대내외적 요인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 천주교가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아직까지는 개신교에 비해서 선명성과 대중적 호의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지금과 같은 추세에서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교회가 정치적으로 보수화 되면 그때부터 교회는 죽어간다. 역사를 통틀어 단 한번도 교회가 이 진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조용기 목사는 설교시간중에 서스럼 없이 광우병은 마귀의 꼼수라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낸다. 다른 대형 교회 목사들도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mb에 대한 찬가를 설교시간중에 쏟아낸다. 종교 지도자의 도덕적 수준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졌으면 이런 발언이 설교시간에 여과되지 않고 쏟아질 수 있겠는가. 교회가 기득권에 안주하면 그 결과는 죽음이다. 몸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혼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파멸이다. 그 파멸의 길은 달콤하고 평안하기에 누구도 거부하기 어렵도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교회가 죽어가는데 안에서 자성과 개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뻔하지 않는가. 한국 천주교도 이 갈림길에 서 있다. 쭉정이가 아무리 많아 봤자, 바람이 불면 죄다 날라간다. 중요한 것은 알곡이다. 알곡이 많은 교회가 되어야지 쭉정이가 넘쳐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의 천주교가 과연 알곡이 많은지 쭉정이 투성인지 조금만 발을 담궈보면 다 안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쭉정이나 늘리는 교회가 되지 말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알곡이 많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좋은 글이네요. 생각거리를 주는 이런 글이 많이 읽혀야 할텐데…. 믹시, 블로거뉴스, 블코 모두 추천 드리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시류에 흔들리지않고 보수가 필요할시엔 보수로 진보가 필요할시엔 진보로. 어딘가에 함몰되지않고. 방향에따라 천주교에 대한 평가가 자신들의 집단의 입맛에따라 상대적으로 평가되는듯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고 김수환추기경의 생각과 행동을 존경해왔습니다. 딱 그정도 좋습니다.
이젠 교회내에서도 내밀한 정치사상적노선이 나뉘어갈듯합니다. 그네들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다만 적어도 상식은 있으니 공존은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적 표현은 정말 최소한도로 정말 필요할시에 해야겠습니다. 종교의 다른 역할도 많으니.
좋은 말입니다. 카이사르의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것은 하느님에게. 아아 과하면 필멸.
부족한 글에 이렇게 관심을 갖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교분리는 종교에 있어서 지상명령이죠.
독재시대라면 모를까, 요즘 같은 세상에 종교가 세상의 정치를 탐해서는 안될 겁니다.
개신교가 그런면에서 참 많이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죠.
천주교회도 지금은 괜찮다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경계의 칼날을 갈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