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당대 평론가들은 지금이 지나면 잊혀질 작곡가로 그를 폄하했지만, 당시 평론가들이 다 죽은 지금까지도 그 명성과 존재감이 대단한 작곡가.
미국에서는 작곡가보다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작곡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러시아라는 거대한 자양분이 사라지면서 라흐마니노프도 창작의 의욕을 상실한다. 그 긴 미국 생활끝에 그곳에 뼈를 묻었으며서도 그는 그곳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였다. 미국에서는 단 한 곡을 작곡하는데, 그것도 파가니니의 곡을 편곡한 것이다. 지금도 유명한 파가니니 광시곡이 바로 그 곡이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어려서부터 살아온 러시아의 풍경과 삶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음악적으로 그에게 어머니 같았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작곡가의 유산을 더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귀족이었던 라흐마니노프는 혁명이 발발하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미국으로 도피하고 그곳에 망명한다. 러시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화적 후진국 미국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생계를 위해 피아노 연주에 매진한다. 당시 미국 청중의 수준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수준 높은 청중과 비교할 바는 아니니 작곡보다는 흥행에 유리한 피아노 연주에 주력한다. 라흐마니노프의 거대한 체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체격만큼이나 거대한 손을 갖고 있어 피아노 연주에 무척 유리한 신체적 조건을 타고 났다. 게다가 그의 놀라운 음악성과 피아노 기교는 당대에 비교할 만한 거인이 거의 없었다. 물론 호프만과 거인은 제외하고…
라흐마니노프가 그 긴 미국생황동안 피아노 연주에만 매진한 것은 어떤 면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떨친 덕분에 이 전설적인 작곡가의 피아노 녹음이라는 선물을 받았지만, 더 큰 선물인 그의 곡은 사라졌다. 러시아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작곡의 영감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조국의 정서과 풍경을 사랑했고 그안에서 행복을 느꼈다. 미국이라는 신흥국가의 번잡함도 라흐마니노프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러시아 전원의 풍경과 미국이라는 나라는 근본적으로 환경이 달랐다. 게다가 늘 연주일정에 바쁘게 쫓겼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그것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보면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것을 버리고 맨몸으로 쫒겨났던, 조국 소련을 위해 모금 연주회를 개최했던 이유가 납득이 된다. 살 수 없는 땅이라 생각했서 떠났지만, 그에게 러시아는 늘 어머니와 같은 그리움과 향수의 대상이었다. 후에 소련 당국의 귀국 권유를 받고 귀국을 준비하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조국으로 돌아가진 못한 비극이 더 클 법도 하지만 스탈린이 지배하는 소련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미국에서 죽은 것이 잘된 일이다. 조국에 뼈를 묻지 못한 아픔은 남겠지만, 최소한 조국은 그에게 영원히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남았으니까.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이라는 환경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최악의 환경임은 분명하다. 라흐마니노프의 후배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나 쇼스타코비치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해 봐라.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방대한 녹음중에서도 특히 작곡가 본인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전곡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지금까지 최고의 난곡으로 악명을 떨치는 이 엄청난 곡을 작곡가 본인이 얼마나 쉽게 연주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템포로 곡을 이끌어가는 이 작곡가의 기교는 가히 전설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반면 빠른 템포로 잃어버린 것은 이 곡이 가진 서정성과 낭만이다. 이는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로 시간내에 쫒겨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남은 녹음 전부가 sp 녹음이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조악하기 그지 없는 열악한 음질이지만, 이 위대한 작곡가의 살아있는 숨결이라는 측면에서 그 모든 녹음이 다 사료적, 음악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낙소스에서 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복각해서 내놓는 것 같다.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미 저작권 시효가 소멸된 음원이니 낙소스가 이전만큼의 복각 기술을 동원해 음반을 복각한다면 훌룡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 작곡가의 사진을 보니 갑자기 말이 길어졌다. 짧게 쓰고 말려했는데 말이다.
앗 이분은 혹시, 영화 ‘Shane’의 그 악명높은 라흐마니노프 3번의 주인공이신 그 분인가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독일 병사와 닮았네요. 😀
맞습니다. ^^
데이빗 헬프갓을 미치게 만들었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한 분입니다.
강건하게 생겼죠. 젊었을 적에는 그래도 미남이었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