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로에서 기대하기 힘든 중량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그것도 3명이나 한꺼번에 나왔다. 참 감동깊게 봤고, 문목사님의 혈육을 통해 직접 들으니 더욱 생생하다. 이 프로를 보면서 알았는데,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이 셋이 대학 동기로 같은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다. 문익환 목사님과 윤동주 시인 사이는 워낙 유명해서 일찍이 알았고, 장준하 선생님과 문익환 목사님 사이는 문목사님이 사회운동에 투신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될 정도 사이니 새로울 것도 없는데, 셋이 한 친구사이라고 하니 참 놀랍다. 세 친구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얼마나 굵직한 삶의 자취를 남겼는지는 뭐 말 안해도 다 할테니…
윤동주 시인이 왜 감옥에서 죽었는지 그 이유도 문성근의 입을 통해 알았다. 감옥에서 생체실험으로 돌아가신 것은 알았지만 그 경위까지는 몰랐는데,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징집에 순순히 응했는데 왜 감옥에서 돌아가셨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서정주와는 달리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서정주는 늙어 죽었고, 윤동주는 젊어 죽었지만 영원한 젊은이로 남은 것.
장준하 선생의 광복군 합류 과정은 워낙에 유명한 일화이지만, 다시 꺼내보자면 징집후 만주에서 일본군을 탈영해 중국 대륙을 무려 6천리나 가로질러 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한다. 6천리는 Km로 따지면 2356km 가 넘는 거리다. 그 멀고 험난한 과정이 얼마나 처절하며 힘들었는지는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을 보면 나온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그 광활한 중국 대륙을 횡단한 것이다. 그후로도 장준하 선생이 가셨던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일제 제국주의와 싸우고, 해방 조국에서는 독재와 싸우고 그렇게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다.
문익환 목사님은 나이 쉰아홉이 될 때까지 성서번역과 한신대 교수직에 전념해 사회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사회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구교 통합 성서번역 작업을 통해 성서 번역이라는 대업을 이루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사실 좀 거리감이 좀 있었던 것이다. 먼저간 친구 윤동주에 대한 미안함이 늘 마음에 남았지만, 선생님을 나이 환갑이 다된 쉰 아홉의 나이로 투사가 되게 만든 것은 또 다른 친구 장준하의 죽음이다. 장준하의 의문사는 (사실 왜 의문사인지 의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죽인 것이 확실하지 않는가 !) 문익환을 충격에 빠트리고, 친구의 죽음은 더 이상 신학자 문익환으로 머물게 만들지 않는다. 장준하의 죽음 앞에서 문익환은 먼저 간 친구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다짐하고 3.1 구국선언을 통해 불의한 박정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선다. 후일에 문목사님 부인이 말씀하시는데, 목사님이 장준하 사진을 보며, 자네가 없는 그 자리를 어떻게 하나 슬퍼하는데, 순간 자네가 하면 되지라는 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한다. 아무튼 문목사님은 장준하 선생님의 죽음 이후 참으로 거대한 생을 사시고 돌아가셨다. 쉽아홉에 투신해 94년 돌아가실 때까지 선생이 사회에 머무른 시간은 5년도 되지 않는다. 17년의 투쟁동안 12년은 감옥에 계셨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이 남긴 자취는 어떤가.
난 문익환 목사님이 꼭 모세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세가 나이 팔십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것 처럼, 목사님도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하느님의 부름으로 받아들였다. 일제시대와 독재를 관통하는 근 100년의 불의한 시대. 우리에게 이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과연 지금의 삶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독립군 장준하를 때려 죽이려 만주를 헤메던 박정희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인가.
정말이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거인과도 같은 삶을 사셨던 분들이다. 그 거인들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시간이 지나면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박정희가 천황께 천세 만세 충성을 다짐하며 만주로 향하고, 요정에 앉아 딸같은 여자애들 끼고 술이나 처먹으며 구국을 말할 때, 저 세 사람은 자신의 가장 귀한 목숨을 내 놓고, 민족과 민중을 위해서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살았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처절했는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역사가 아무리 날조되고 거짓으로 채워진다 하더라도 박정희와 이 세분의 삶은 비교가 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추해지는 것은 박정희요, 더욱 빛나는 것은 이 세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저는 TV를 안 본지 꽤 됐기 때문에 몰랐습니다만,
이런 내용이 무릎팍도사에서 방영되었을 줄은 상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오락프로의 수준이 완전히 추락한 것은 아니군요 ㅋ
장님이 문고리 잡은 격이죠.
예능은 뛰어 봤자 예능일 뿐입니다. ^^
저도 동호회 게시판에서 보고 옮겨 거에요.
구구절절 맞는말씀..
동조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