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참 서글픈 생각과 함께 500여년을 이어온 나라가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망할 수 있나 생각이 밀려온다. 고종이 생각이 있는 임금이었으면 1905년 을사늑약때 자결했어야 옳았지만, 1907년 군대가 해산되고, 1910년 나라가 강제병합되었어도 고종은 살아있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더 살고 막내딸 덕혜옹주까지 낳고 살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에 선전포고 한 적도 없으며, 정식으로 칼 한번 뽑아보지 못하고 죽었다. 고종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측근에게 의병을 거병도록 하고 비자금 5만원을 하사한다. 의병이라고 해야 최신 일본 군대에 장난감 같은 총으로 대항하는 의병이 전부였다. 순전히 의병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은 나라를 위해서 아끼지 않은 이름없는 백성의 희생때문이었다. 의병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죽음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이름없는 저잣거리의 갑돌이도 나라를 위해서 제 한 목숨 바치는데 나라의 임금이라는 작자는 외교다 뭐다 삽질에 여념이 없었다.
지도자 하나 거지 같은 놈 앉혀놓으면 한 나라의 운명이 순식간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해왔다.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가난한 나라에 자부심을 갖을 수 있는 것은 이름없이 사그러져간, 영웅들 때문이다.
역사스페셜 같은 프로그램이 좋은 까닭은 역사의 숨겨진 면모를 사실 그대로는 아닐지 몰라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예전의 한국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는데, 요즘 역사스페셜은 그저그런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것 같다. 그나마 요즘 볼만한 것은 한국무장독립운동사를 다루고 있는 이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대한제국 마지막 군대의 대대장 박승환, 이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것 만으로 시청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박승환 대대장은 1907년 군대해산명령에 자결로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자결이 대대원들의 무장투쟁의 불씨가 되었음은 두 말함이 없다. 성리학이라는 생활윤리에 불과한 학문을 가져다 국가윤리로 끌어다놓고 500년 실컷 해먹었다, 민중은 배고파 죽어나가고 나라는 왜놈에게 넘어가버렸다. 이 지긋지긋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 그래도 안타깝고 울분에 차 이름없는 갑돌이 갑순이는 죽창들고 일어서고 힘없는 자는 뒤에서 이들을 도왔다. 담사리(머슴) 의병장을 유명한 안규홍 의병장이 대구에서 교수형 당했을 때 이름없는 백성들은 그의 시신이라도 찾아오려고 십시일반 돈을 걷고 위험을 감수하며 그의 시신을 찾아왔다.
우리 역사가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온 까닭은 의인을 잊지 않고 그가 가는 마지막 길이라도 함께 해주려고 애쓴 이름없는 민초들의 피와 땀 덕분이다. 우암 송시열을 아무리 송자라 부르고 칭송해도 그는 보잘 것 없는 사대부요, 지 욕심에 혈안이 된 노인에 불과하다.
나라의 군인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목숨을 마친 박승환 대대장이 있는가 하면,
친미파로 반일에 앞장서다 시류에 영합하여 친일파의 대명사가 된 이완용이 있고,
나라의 임금으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만큼 살았으면서도 제 목숨 아까워 죽지 못한 이름도 찬란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도 있다.
망한 나라 조선의 마지막 이름 대한제국,
이 얼마가 쓴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