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시내와 저 멀리 보이는 산 아래 동네 중간에 위치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아래 살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시내에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살기는 시설은 열악해도 산 아래 동네가 더 살기 좋았다. 이곳은 그래도 너른 평야지역이라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여있다. 그리고 4차로 대로가 지나고 있어서 교통도 편리한 편. 이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 사는 곳이 오래 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가장 큰 이유는 한밤중에 마을을 감싸는 정적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산속 동네 답곡에서 느끼던 그 무거운 정적. 마을을 감싸고 도는 그 차분한 분위기는 처음 내가 답곡을 가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한다. 처음 답곡에 갔을 때 마을 입구에서 나를 맞이해주던 반디불과 깊어가는 가을저녁의 그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 나는 그렇게 그 동네에 첫날부터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 물도 안나오고 화장실도 없는 그 집에서 1년을 살았지. 겨울에 뼈를 울리는 추위가 뭔지도 그곳에서 알았다. 겨울에 낭방하지 않고서도 견디던 나였지만 그 산속동네에서는 그건 견디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
지금 나는 사는 곳의 위치만큼 중간에 서 있다. 그리고 삶도 중반에 서 있다. 여기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결정하느냐가 나의 남의 삶을 결정하겠지. 나도 이제 내 삶의 반절 정도 달려왔다. 무엇 하나 이룬 것은 없지만 그래도 후회가 조금은 적은 삶을 살아왔다. 직장생활과 함께 시작한 삶의 빠른 변화속에서 어느 덧 나도 직장 2년차가 되어가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요즘은 무엇보다도 바쁜 삶을 살고 있고. 월요일이 시작하면 금새 주말이 되고 즐거운 주말은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월요일 직전.
여름이 지나고 있다. 유난히 힘든 여름이었다. 정신도 차릴 수 없었고 차리자마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이제 여름이 시들해져가고, 일조량은 줄어들겠지. 그리고 가을이 오고. 그렇게 또 한해가 가고 또 그렇게 겨울을 맞이한다.
그래. 겨울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