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와 리히터의 일화

로스트로포비치는 말년에 자기 젊은 시절 보았던 쇼스타코비치를 회상하며, 그 위대한 천재를 다시 만난다면 신을 만나는 것 이라고 인터뷰에서 말 한 적이 있다. 그 시절 소련에는 쇼스타코비치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지금와서 보면 그때가 러시아-소련-러시아로 이어지는 저 나라의 역사중 가장 찬란한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차이코푸스키를 필두로 러시아의 5인조 작곡가등이 활동하던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위대한 전통이 러시아의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빛을 발한 것은 전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 처참함은 여러 기록에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전통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전통이라는 것은 위대한 것.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의 위상을 생각하다, 그들의 일상을 적은 글들을 접하다보면 로스트로포비치의 저 고백이 그냥 농담 삼아 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생각난 사람이 프로코피에프와 리히터.

리히터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그냥 전설의 향연. 이 생각이 절로 든다. 리히터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등 당대의 대 작곡가들과 동시대를 살며 그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며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리히터는 천성이 쇼스타코비치 같은 사람과 맞지 않았던 듯 하다. 그의 회고록에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높은 평가는 있지만, 인간 쇼스타코비치는 그와 맞지 않았던 듯…

반면 프로코피에프는 리히터랑 잘 맞았던 듯 하다. 리히터가 보기에 프로코피에프는 부르주아에 권력층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지닌 좀 안 된 사람으로 느꼈지만, 리히터는 프로코피에프가 좋았던 듯. 그와의 일화를 회상하며 가난했지만 지금 유쾌했던 그때를 이야기하니 말이다. 일화중 하나를 꺼내면, 프로코피에프와 리허터가 피아노 앞에서 같이 곡을 연구하고 의논하다 악보가 피아노 밑으로 떨어져 같이 악보를 줍다 꽝 하고 피아노에 둘 다 머리를 찌고, 서로를 바라보니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리히터는 최말년 그 때에도 그 날의 기억을 생각하면 재미있고 인상깊은 기억이었나 보다. 비참한 말년을 맞이한 프로코피에프에 대한 안쓰러운 기억을 더듬으며 위대한 작곡가의 말년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프로코피에프가 스탈린이 죽는 날 같이 죽으며 잊혀진 것 같았지만 프로코피에프는 다시 살아났고, 리히터 역시 레코딩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그 빛을 잃지 않을 것 이다. 다만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고전음악의 전통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통영에서 페친들과 공연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저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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