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찬양?


그래서 꽤나 엄격한 채식의 잣대를 지니고 있어 우유나 달걀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당연 생선 먹으면서 채식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보면 우습기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20대 초반에는 육식의 폐해에 몇년간 비건 수준의 채식주의자였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20대의 객기라고 생각하지만 ㅡ.ㅡ


경제에 대해서 조금 조금 알아가면서 드는 생각은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개념. 이 개념이 머리속에 조금씩 자리잡아 가다보니 이전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일례로 멸치다시다가 건강에 해로운 것도 아닌데 굳이 이걸 외면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다. 멸치를 잡아 식탁까지 올리는 수고와 에너지를 제외하고서라도 고작 국물을 우려내고 죄다 버리는 멸치를 보며 MSG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조금 맛은 떨어지더라도 MSG를 적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인류에게 더 득이 된다는 생각.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아껴야 한다. 자연주의, 유기농 물론 좋지만, 이게 능사인 것처럼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건국훈장의 무게

유관순에게 건국훈장이 주어진 것을 두고 말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받을만 해서 받는거고 이 훈장이 독립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거나 공이 커서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됨. 이승만도 받았고, 김구도 받았음. 유관순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에게 상징적인 이 훈장을 주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그렇게 치면 이승만 김구보다 여운형이 1순위로 받는 것이 마땅한 순위가 아닌가. 호형호제하며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자며 이승만을 따랐던 김구가 이승만에게 뒤통수 맞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김구의 위상이 존재했을까?

다 망한 임정 혼자서 붙드고 이끈 김구의 불굴의 투사 시절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백색테러부터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백범은 오늘날 누가 기억하는가.

신앙은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

신앙은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믿음으로 환상을 보며 방언을 내뱉던 시기를 지나도 내가 신앙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면 지금 당장 천국에 가고 싶다는 고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던 20대의 그 처절한 날들이 지나고 40대가 된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그때와 같은 객기는 다 사라지고, 웬지모를 미련이 조금씩 늘어난다.

나만 생각하던 시절, 그 시절은 나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천국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 자에게 죽음은 그저 지나는 관문일 뿐.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문고리를 선듯 잡을 수가 없다.

나도 나이를 먹었고, 가정이 생겼고, 나만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굳이 구별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흐르는 것 처럼 나라는 존재도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기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던 그 짧은 시간, 떨어지는 내 모습과 바닥에서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의 감각이 생생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주변의 부산한 소음과 움직임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의 비현실적이고 비감각적인 체험은 잊지 못할 것.

내가 없다면, 이 생각을 요즘 며칠 해보니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생각과 정리해야 할 것도 많은 지금의 삶이 맞는 것인지… 고민을 해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이 질문에 더욱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