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사울 (이준형 풍월당 강의)

헨델 사울 이 한곡으로 당시 영국의 정세와 사회상까지 풀어내고 대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과 의미까지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청중은 어떤 강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방대한 축적을 거져 얻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다.

헨델의 삶과 음악에 대한 해설은 청중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쌓아올릴 수 있다. 그만큼 정보과 서적이 이제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접할 수 있는 시대.

문제는 한발자국만 더 앞에 나가려면 그간의 노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투자가 필요하다. 강의는 이런 면에서 수영으로 건너야 하는 강을 다리로 건더는 것과 비슷하다.

사울 대본의 의미를 이렇게까지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뜻깊은 어제 강의.

이준형 ‘핸델 오라토리오 사울’ 강의였음.
사울을 해석하는 정치적 의미
대본작가 챨스 제넨스의 자기 모순적 상황
온전히 강의에만 집중 할 수 없는 나의 자기모순적 상황 ㅋㅋ

지메르만 공연 후기

# 첫인상

예순을 훌 쩍 넘은 지메르만. 나도 늙어가지만, 나의 지메르만이 이렇게 늙었구나. 음반자켓과 음반으로만 접하던 젊은 날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멋지게 나이가 들었다.

# 지메르만 연주자세

예상과 달리 지메르만은 체구가 외소한 것이 놀랬다. 음반으로 접하는 지메르만의 타건이 단단하면서 박력이 넘치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내 생각과 전혀 반대였다. 한편으로는 거구의 초인적인 기교를 앞세운 러시아 피아니즘의 영향을 내가 많이 받았구나 생각.

지메르만은 연주동작이 크고, 발까지 동동 구르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신을 동원해 강약을 조절하며, 피아노 톤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 다른 측면에서는 불리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과, 노화에 따른 신체의 퇴행을 어떻게 극복해낼지 그것이 관건이라는 생각. 연주 후에 힘들어하는 지메르만을 보며 신체조건을 초월해 경이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에 대한 찬사가 절로 나왔다. 소콜로프 연주회 실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쉽게  피아노를 치는지 알 수 있다. 쉽다는 표현은 경제적인 연주라는 표현. 적은 움직임으로 강렬한 타건과 음향을 만들어내는 힘은 소콜로프의 탁월한 신체조건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 무뉘만 피아노 덕후

피아노 덕후를 자처하였으나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을 못 알아봄. 토요일 공연도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착각하고 있어, 3번이 아닌 엉뚱한 곡이 나와 당황. 이게 누구의 곡인지 듣는 내내 고민. 게다가 앵골곡으로 나온 브람스 발라드를 1번만 알아듣고 2,4번을 브람스 간주곡으로 알아들음. 브람스를 들은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대략 난감. 적어도 브람스는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ㅡ.ㅡ 게다가 발라드 4곡은 브람스 곡중에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브람스 곡인지는 확실히 알지만, 이걸 간주곡과 착각했다는 것이 대략난감.

#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메르만의 거의 모든 음반을 들어보고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은 ‘완벽주의’ 이 한 단어로 결론내릴 수 있다. 어느 곡이든 지메르만의 음악은 템포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보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 경계에서 루바토마저 극도의 계산끝에 선택한 것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다. 변덕스럽다거나 변칙적인 루바토는 지메르만 어느 음반에서도 볼 수 없다. 이것은 지메르만의 인터뷰를 봐도 유추할 수 있는데, 과거의 명인들과 달리 지메르만은 과학기술을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음반을 듣는 차원을 넘어 노트북으로 수십가지 음원을 분석하고 악보와 대조하며 자기가 만들어가야 할 음악에 대한 기초자료로 삼는다. 이렇게 분석하고 고민하며 음악을 만들어 가다보니 음악 자체가 굉장히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장 최근에 나온 슈베르트 음반을 듣고서도 그랬고 지메르만의 대표작인 쇼팽 발라드 음반도 매우 치밀하게 조적된 벽돌을 깔아가는 건축물을 보는 듯한 기분. 악보는 기본이고 과거와 현재의 명인들의 연주까지 다 들어보며 비교하며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탐구하는 그에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면모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의 연주가 지나친 감정의 탐닉과 테크닉의 과시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완벽주의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예시가, 지메르만의 쇼팽 발라드 음반이며, 지메르만은 완벽한 템포 감정 기교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어울어질 때 음악이 완전비율로 완성한 조각품처럼 완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실황에서의 지메르만

실황에서  느낀 지메르만의 면모는 음반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음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실연의 열기와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금요일 공연에서  제법 쏟아지는 미스터치는 지메르만 왜 실황음반은 커녕 실황 녹음에까지 경기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이 완벽주의자에게 현실은 가혹한 자기반성의 장이다. 녹음실에서 모든 조건과 환경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내려는 그에게 현실에서의 한계는 피하고 싶은 장벽 그 자체일 것. 때문에 연주회에 대한 그의 부담도 상당하리라 짐작한다. 그가 1년에 50회 내외의 연주회만 고집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메르만의 장기는 톤에 있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때문에 물리적 특성과 한계 그 경계에서 음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켈란젤리도 그랬듯 자기만의 피아노를 고집했던 것도 각기 다른 피아노의 건반무게 터치감. 그리고 반응 피아노의 상태등 이 모든 것을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정밀하게 콘트롤 하고자하는 집념의 산물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계산적이고 치밀한데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자연스럽게 들리는 까닭은 극한에 다다르면 경계가 사라지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상황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그 완벽한 톤은 그 톤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 기교가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메르만은 기교파 연주자로 각인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지메르만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자,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비교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떠오르는 기교파 피아니스트들의 과시적이고 압도적인 연주가 갖지 못한 구조적인 완결성과 유기적인 연결이 지메르만의 연주에서는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구현된다. 완벽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기계적이고 경직적인 특성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지메르만이 현존 하는 최고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라고 단호히 말 할 수 있다.

금요일 공연은 지메르만이 컨디션 관리에 상당히 애를 먹었던 공연. 코를 울쩍이고 손수건으로 코닦고 연주 끝나고 나가면서도 코닦고. 나중에 기사를 보니 코피까지 흘렸다고 함. 첫 곡인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이 부담이 많이 되는 곡이다 보니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지메르만의 명성에 못 미쳤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폄하할 정도는 아니었음. 미스터치는 없으면 좋지만, 있어도 그만. 곡 전체의 완성도를 떨어트릴 정도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2부 공연부터는 한결 나은 연주를 들려줌. 컨디션이 더 좋아져서는 아니고 쇼팽 곡에 비해 브람스 곡이 갖는 난해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토요일 공연은 일단 콧물이 사라짐. 그래서 손수건도 사라지고. 금요일에 비해 컨디션이 확실하게 좋아짐. 더불어서 연주 자체도 좋아졌음. 그렇다고 금요일 공연에 비해 압도적이다 이런 견해에는 동의 할 수 없음. 같은 곡을 연주한 쇼팽 스케르초만 놓고 볼 때 금,토 모두 훌륭한 연주였지만 굳이 고르자면 토요일 컨디션이 좋아 연주가 더 나은 것일 뿐.

금, 토 공연을 관통하는 지메르만의 일관된 점은, 곡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느껴지는 구조적 탄탄함. 템포가 음반에 비해 빨라지거나 느려진 부분이 있어도 실황 특유의 즉흥성과 더불어 또 다른 완결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지메르만의 일관된 톤관리.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그 아름다운 음색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지메르만의 특별함을 보여준다.

피아노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이번 지메르만의 공연은 몇 안되는 압도적인 감동을 가져다 준 귀한 경험이다. 그가 좀 더 건강관리를 잘 해 내한 공연을 몇 번만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뿐.


2019년 3월 22일 금, 롯데콘서트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쇼팽 스케르초 전곡

마주르카


2019년 3월 22일 토, 롯데콘서트홀

마주르카 4곡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쇼팽 스케르초 전곡

브람스 발라드 1,2,4번

MSG찬양?


그래서 꽤나 엄격한 채식의 잣대를 지니고 있어 우유나 달걀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당연 생선 먹으면서 채식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보면 우습기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20대 초반에는 육식의 폐해에 몇년간 비건 수준의 채식주의자였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20대의 객기라고 생각하지만 ㅡ.ㅡ


경제에 대해서 조금 조금 알아가면서 드는 생각은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개념. 이 개념이 머리속에 조금씩 자리잡아 가다보니 이전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일례로 멸치다시다가 건강에 해로운 것도 아닌데 굳이 이걸 외면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다. 멸치를 잡아 식탁까지 올리는 수고와 에너지를 제외하고서라도 고작 국물을 우려내고 죄다 버리는 멸치를 보며 MSG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조금 맛은 떨어지더라도 MSG를 적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인류에게 더 득이 된다는 생각.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아껴야 한다. 자연주의, 유기농 물론 좋지만, 이게 능사인 것처럼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