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삽질에 대한 이해

은은한 천둥소리, 환율 — 김세형 칼럼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이르고 철강가격도 천정부지여서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브라질 같은 나라들. 땅덩어리가 덩칫값을 하는 시대다. 그런데 ‘네덜란드병(病)’이란 말을 혹 들어보았는가. 과거 네덜란드에서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발견되고 이를 팔아 대박을 터뜨리자 네덜란드 화폐가치 또한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결국 제조업 수출경쟁력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지구상에서 자원이 없는 일본 홍콩 한국 같은 나라는 번영하는 반면 석유 매장량이 많은 중동의 걸프만 국가,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번영하지 못하는 패러독스를 낳는다. 국민은 대개 빈둥빈둥 논다. 석유 때문에 결국 가난해지는 현상을 일컬어 ‘거친 각성’ 혹은 ‘석유의 저주’라고도 부른다. 미개한 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심지어 영국도 1980년대 북해유전을 발견한 뒤 파운드화 급등으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우리는 대개 환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이렇게 무서운 게 환율이다. 그것은 멀리서 다가오는 천둥이며, 언젠가 눈앞에 벼락을 치는 존재이다.


한국도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치하에 들어간 당시 환율의 복수를 톡톡히 당한 적이 있다. 1996년 한때 달러당 760원대까지 떨어질 때 필자는 미국 연수 중이었는데 참 좋은 세월이었다. 한국 돈의 가치가 높으니 어깨가 으쓱해지고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자부심도 높았다. 결국 한 나라의 돈은 ‘경제의 실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되는 것이니까.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를 당하자 1970원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돈가치가 거의 3분의 1로 추락했으니 외국인들의 돈잔치에 몸을 내맡긴 격. 우선 증시 문호부터 열어젖힌 그들은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현재 100조원 이상을 벌었다. 빌딩도 외국인들은 거저 줍다시피 했다. 지금도 서울시청 옆 파이낸스빌딩을 지나가면 기분이 나빠진다. 지금 수천억 원을 호가할 건물을 당시 980억원이란 똥값에 약삭 빠른 싱가포르인들이 챙겼으니까. 그들이 맘 먹고 강남 아파트를 싹슬이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모두가 환율이 부리는 마술이다.


그런데 환율, 즉 돈값은 그저 사기로 술수를 부리는 건 아니다. 경제체질이 허약해지면 엉터리 환율은 길게 못 버티고 ‘실질실효환율(EER)’ 법칙에 따라 제값으로 돌아온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에선 ‘달러의 저주’가 진행되는 느낌이다. 달러는 전 세계 중심통화인 동시에 악의 축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그 원인은 바로 미국의 방대한 무역적자에 있다. GDP의 5~6% 규모, 연간 6000억달러 이상 적자를 내는 미국 경제는 외상경제다. ‘달러의 위기’를 쓴 리처드 덩컨이란 저술가는 미국의 수입은 세계시장의 엔진이기는 하지만 영원히 적자라 계속되지 못할 3가지 이유를 들었다.


1) 계속 빚을 져야 하는데 상환능력이 있는가.
2) 무역흑자국은 자산 버블을 일으켜 전 세계 은행위기를 초래한다.
3) 과잉투자와 초과설비를 야기하여 디플레이션 원인이 된다.



이해하기 어려운가? 좀 더 쉽게 설명하겠다. 미국은 매년 5000억~60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내는데, 이 돈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무역흑자국 수중으로 들어간다. 10년이면 5조달러, 이 돈은 한국의 연간 GDP 5배를 넘는 규모. 그런데 흑자국은 이 돈을 어찌할 줄 몰라 다시 미국 재무부 증권이나 주식, 기타 자산에 투자한다. 그러면 미국은 외상경제이면서도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미국 금융기관들은 지구적으로 유망하다는 곳에 집중 투자한다. 결국 미국의 무역적자가 전 세계 통화를 찍는 공장이 되는 셈. 이 돈이 온 세계를 누비면서 잔치를 벌인다. 부동산, 곡물, 원유, 닥치는 대로 투기행각을 벌이며 값을 아찔하게 높인다. 거품은 거품을 부르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면 스스로 터진다. 그러면 금융기관이 망하고 어느 나라에선가 환율은 폭등(돈가치 폭락)하는 것이다. 환란 때 태국이나 한국처럼.


미국이라 해서 영원할 수는 없다. 몇 번씩이나 당한 중동 산유국들은 “달러는 휴지니 안 받겠다”고 손사래친다. 유로화나 다른 통화를 달라고 한다. 중국도 이제 미국자산 투자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으며, 한국도 몰래 행동하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가지 않는 나라는 결국 돈가치가 떨어진다. 유로화 대비 달러는 지난 수년 간 60%나 곤두박질쳤다. 눈치 빠른 짐 로저스 같은 ‘꾼’이 “이제 미국은 끝났다”며 맨해튼 집을 팔고 싱가포르로 이사해 버렸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런 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환율의 천둥소리를 그는 미리 들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서브프라임 문제지만 이제 1971년 8월 닉슨에 의해 취해진 금태환 정지 이래 30년 만에 세계 금융시장 질서는 근본적인 변화 초입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긴 환율의 휘파람 소리에 가끔씩 귀를 기울여라. 97년 외환위기에 망한 대우 관계자들이 “삼성은 영리하게 환(換)헤지를 잘해 버티고 우리는 미련하게 일만 하다 망했다”는 한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은은한 천둥소리, 환율 2 
 
미인대회나 스포츠 MVP 선정에서 아슬아슬하게 1등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대개 압도적 스코어로 된다. 왜냐고. 인기투표니까. 투자 대상을 보고 꼬여드는 핫머니도 이와 흡사하다. 부동산이 좋다면 그쪽으로, 펀드가 좋다면 그쪽으로 바람이 분다. 이는 로컬(Local)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국제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미쳐 날뛰면 우리는 어느 정도 그들의 흉내를 내야 한다”는 프랑스 은행가 마르탱의 말은 매우 그럴싸하다.


되돌아보라. 2~3년 전에 부동산이 유망하다니까 국내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엔캐리 자금이 강남 부자들에게 돈을 꾸어가라고 재촉했다. 종부세를 부과한다, 양도세를 높인다 그런 위협은 눈앞에 벌어지는 돈 놓고 돈 먹기 싸움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요공급과 돈줄 죄기로 처방하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참모들은 참 어리석었던 것이다. 투기를 잡으려면 인기투표를 중단시켜야 했다.


외국인 국내 주식 매입도 마찬가지. 2년 전에는 20조원 이상이 몰렸다. 작년 상반기에도 그랬다. 시중 유동자금은 모조리 펀드로 몰렸다. 기업들은 사상 최고 수익을 내고 국제수지는 300억달러 가까이 흑자를 낸 적도 있다(2004년도). 그야말로 유동성이 물이라면 물에 빠져 죽을 만큼 풍족했다. 돈의 인기투표에서 한국의 자산(부동산, 주식)은 MVP였던 것이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슈퍼 베테랑들이 “위험하다, 위험해. 중국, 인도, 베트남 주식에서 탈출하라니까”라고 외쳐봐야 쇠귀에 경 읽기였다. 조선업체들이 사상 초유의 수주를 해놓고 달러화로 선박대금이 들어올 것을 감안해 외환선물환을 매도했는데 그게 920~930원대. 지금 1000원으로 갔으니 아주 망했다.


상당히 영리하다는 전문가들조차 하는 짓이 이렇다. 모두가 탐욕 때문. 심지어 미래에셋이 인사이트펀드에서 고전한 것도 인기의 속성을 ‘아차! 깜빡했던’ 탓일 게다. 인기라는 것은 정말 묘하다. 어느 순간 인기 폭주로 익사할 뻔하던 것이 한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니까. 한국 증시로 몰려들던 외국자본은 순식간에 20조~30조원을 빼내는 주체로 변했다. 한국의 미모가 돌연 안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그 많던 무역수지 흑자도 돌연 말라붙어 바닥이 쩍쩍 갈라 터진다. 그리하여 갑자기 흑자가 적자로 돌아 달러 초과에서 부족으로 상황이 역전된 것. 돈이란 한꺼번에 밀물처럼 닥쳤다가 이내 거품 붕괴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출입구 폐쇄공포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아우성치며 빠져나간다. 미국의 달러가치는 지난 수년간 50%가량 폭락했다. 가만히 앉아서 미국인들은 50%만큼 가난해져 버린 것이다.


원래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금을 위시한 상품가격이 오르게 된다. 이런 맥락을 알고 유로화나 엔화 표시 예금에 가입했더라면 당신은 제법 부를 늘릴 수 있었다. 혹은 상품 펀드에 가입했더라면 연간 60%가량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런 금융상품들은 이제 국내에서도 많이 판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쌓은 신기루는 이제 꺼져가고 있다. 그 시점이 언제일까에 대해 “미국의 부동산값이 하락하기 시작할 때”라는 경보는 무수히 울렸다. 그게 작년 상반기였다. 한국의 조선업체들이 거꾸로 행동하기 직전이었다.


외환시장 방향만 알면 손에 흙을 묻히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금리 향방을 미리 알면 거부(巨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외환시장에 이런 속담이 있다. 딜러의 87%가 한 방향을 예측하면 그때부터 시세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이럴 때 “반대로 하는 게 수지 맞는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돈가치(환율)가 변하면 전 세계 돈의 공급로는 방향을 바꾼다. 그리하여 당신 주변에도 무수한 변화가 닥친다. 한국의 돈가치가 떨어졌는데 당신 직장이 원자재를 수입해다 국내에서 제품을 파는 식품업체라면 아마 월급을 깎자고 할 것이다. 게다가 당신의 자녀가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기러기 가족이라면 정말 생활은 곤궁해질 것이다.


반대로 해외에서 큰 수주를 한 업체라면 매우 즐거울 것이다. 환율은 당신 주위를 배회하며 희로애락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달러의 기상도를 중심으로 태풍이 형성되는 모순을 해결하자면 세계 통화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고 한다. 흑자나 적자를 많이 내는 국가에 벌칙을 매기는 방법도 균형을 재촉하는 방식이라 한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지 말고 ‘세계통화’를 새로 만들어 관리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한국은 발언권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환율이 내는 천둥소리를 알아듣는 기술이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말씀!


[매일경제 / 김세형 편집국장]


출처 : http://blog.naver.com/pokara61/15003298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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