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비극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그제 밤에 이 글을 읽고 속이 답답했다. 우리의 다람쥐 챗바퀴와 같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이땅에 말뚝을 박은 박노자님은 글은 언제나 귀담에 들을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통찰력 있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깃든 그의 글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과 듣지 못하는 소리에 대한 대변자이기도 하다. 인용한 글에서 나오는 소수의 남성 숙련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주로 만들어진 “우리 조합” 이 문구에 속이 턱하니 막힌 것 같았다. 우리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이 보수적이고 때문에 그러한 정치성향을 갖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서민을 자처하면서도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기껏 진보적이라는 티를 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우리의 현실. 모든 정치적 비극은 자신의 계급을 망각한 민중의 선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당장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을 지지하면 서민들 살림살이가 눈에 띄이게 나아질텐데, 왜 답답하게 수구과 보수정당 양쪽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일까?

더 큰 문제는 힘없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뭉친 노조라는 곳에서 발생한다. 뻔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간부자리 하나에 목에 힘이 들어가고 출처모를 위세가 등등하다. 지금의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과연 이땅의 힘없는 노동자을 위한 집단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이 본래 그래서인지 모른다. 본래 악해서 돈 몇푼이 주어지면 양심이 흔들리고, 권력 나부랭이가 손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는 것인지도. 어제 워낭소리를 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두 노인네는 평생 자신들을 위해서 일만한 소에게 감사한 마음을 늘 잃지 않았다. 미물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소는 가족이고 동료였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상실한 이 시대가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를 어제 알았다. 생명에 대한 기본을 잃어버린 우리 세대에 정의나 평등은 그저 허울뿐인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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