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뭔가 한 평생을 책임질줄 아는 사람의 아우라가 풍긴다.

싸구려 이승만과 비교할 수가 없네.

해방후 정치공간에서 가장 빛을 발했지만, 그 찬란한 빛때문에 이승만 일당에 의해 암살당했다.

백범도 그렇고 몽양도 그렇고 안봐도 이승만 짓이라는 것 뻔하지 않은가.

독립 투사 김구는 어울리지만 정치인 김구는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그런면에서 행방후 그 혼란기에 몽양이라는 정치인이 얼마나 아쉬웠는지는 생각하면 할수록 아쉽다.

이승만이라는 이 희대의 망할놈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자다가도 경기가 들 지경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이라고 하와이와 미국에서 한 짓을 안다면 그를 독립운동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승만이라는 이 희대의 죽일 잡놈의 등장은 민족에게는 재앙이었고,
신생국가 대한민국에는 썩은 주춧돌의 시작이었다.
반면 친일파에게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신의 축복이자 은총.

몽양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부역자에게 떠밀리듯 열차에서 써준 한장도 안되는 문서 쪼가리로 몽양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작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던 독립투사를 법정에 넘긴 이승만은 뭔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가 떠드는 골빈 것들아. 이승만이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서 어떤 짓을 하며 민족의 등골을 빼먹었는지 조사해봐라. 그게 독립운동인지 어느 잡놈의 불꽃놀이인지.

해방후 혼란기에 민족의 재앙이 기독교신자인 이승만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자인 내게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같은 기독교 신자인 그에게 내가 동질감이 아닌 심한 이질감과 혐오감을 느끼는 까닭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 수많은 폐단의 아버지가 바로 이승만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친일파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만연한 이 사회의 불의와 부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몽양 여운형”에 대한 11개의 생각

  1. 완벽동감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래하는 편견과 에이 우리가 모 하는 자학 역시 그에게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근데 지금의 정권이 그리도 사랑하는 그 이라는 것이 참 암울합니다.

  2. 여운형 선생이 암살되는 바람에 그가 가진 식견과 경륜을 미처 다 펴지 못한 것은 해방 정국에서
    우리 민족에게는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운형의 암살 배후에는 박헌영의 남로당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의 몽양 이해는 주로 이정식 선생님의 책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강덕상 선생과 더불어 몽양의 연구로는 그 분의 견해가 가장 사태의 진상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승만에게도 몽양 암살의 동기는 존재하지만 최근 공개된 여러 자료는 박헌영쪽의 행위 동기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몽양의 딸 여연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들로 ‘종파분자’ 즉 박헌영계를 지목했습니다.

  3. 한때는 이승만이 근대운동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이 참 웃기게 느껴집니다.
    이런 썩을대로 썩은 인간이 한나라의 대통령이 되다니, 하나님도 참 무심하셨지요.

  4. 전혀 몰랐던 내용을 알려주셨네요. 단순하게 해방정국의 역학구도를 생각했던 영향이 크네요.

    무엇보다 해방직후 몽양이 보여준 정치적 역량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지요.

    제가 이승만을 배후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와이 시절부터 테러는 이승만의 주된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와이 동포 사회를 분열시키고 반대파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했던 이승만의 전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5. 저는 역사에 무지한 축에 속하는 편인데, 조만간 여유가 있는 때가 오면 이 분이 활동하던 시기의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해 놓은 책을 구해서 함 읽어봐야겠어요.

  6. 늦달님, 공감 백만개입니다!^^”
    근데 이 귀한 사진을 어디서 구하셨는 지 궁금해요.
    제 블로그에도 몽양 선생님에 관한 자료들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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