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8 로르티, 서울 시향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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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이 대머리 아저씨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광적으로 집착하는 몇명의 피아니스트중 한명이다. 로르티의 쇼팽 연습곡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로르티의 열렬한 애호가가 되어버렸다. 근육질의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처럼 엄청난 기교와 힘을 과시하는 연주자도 아니며, 힘의 부족함을 해석으로 채우려는 그런 연주자도 아니다. 로르티는 힘과 기교, 그리고 해석 이 세가지가 동시에 균형을 이루고 있는 최정상급 연주자이다. 굴드 이후 최고의 캐나다 피아니스트라는 영광에 전혀 손색이 없는 연주자인 것이다.

오늘 음반으로만 접하던 이 황금 피아니스트를 직접 조우하게 되었다. 빛나는 머리만큼이나 빛나는 연주였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우선 피아노와 아주 가까운 좌석임에도 피아노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반면에 뒷쪽의 오케스트라 소리는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어왔다. 아마도 세종문화회관의 박스모양 무대가 원인인 것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연주는 김빠진 사이다와 같은 연주처럼 들렸다. ㅡ.ㅡ

그렇다고 연주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연주자는 시종일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을 위해서 기민하게 반응하며 반주와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관객보다도 지휘자와 단원들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만 봐도 그가 음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솔로주자들의 연주가 등장할 때 마다 그들의 도입부를 유심히 바라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연주자… 환한 웃음만큼이나 흐뭇한 광경을 배달해주는 연주자이다.

로리트의 연주는 연주자체는 흠이 없을만큼 기교적으로 음악적으로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홀의 음향탓도 있지만 넓은 홀을 울리는 음향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평소보다 과감한 터치를 구사한 탓에 로르티의 섬세하며 서정적인 톤들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홀의 구조적 문제점이 아닌가 싶은 이 점이 연주의 성과를 깎아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였다. 악명높은 세종문화회관의 음향을 직접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ㅡ.ㅡ

반주에 몸을 맡기고 그만의 온화한 얼굴로 서정주의를 만들어가다가도 광폭한 폭군으로 돌변하는 부분들에서 그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갔다. 슈만이 비르투우조를 위한 협주곡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대단히 난곡이다. 슈만의 피아노 곡들이 그렇듯이 이곡도 곡상의 전개가 상당히 급작스럽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산만한 연주가 되기 싶상이다. 그래서 슈만의 연주에는 열정과 냉정이 동시에 필요한 법이다. 로르티는 이 점에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기에 제격인 연주자가 아닌가 싶다. 얼굴로 연주를 보여주니 말이다.^^

1악장 종지부의 옥타부 처리나 이곡의 가장 빛나는 3악장에서 발군의 실력 또한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로르티의 시정을 담기에 세종문화회관은 비대하였으며, 그의 시정을 뒷받침하기에 서울시향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관객들의 어설픈 호응덕분에 앵콜도 없이 끝난 연주회… 덕분에 미련도 없이 집으로 직행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연주회를 곰곰히 짚어보니, 그래도 남은 것이 많은 연주회였다. 로르티라는 연주자의 그릇을 직접확인 할 수 있었으며, 최고의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생각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감상하였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조합중의 하나인 로르티 + 슈만 피아노 협주곡 = 이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앵콜이라도 몇곡들었다면 로르티의 진면목을 더욱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이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덧글…

1.
연주자가 연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이 극장의 책임이 아닌가…
연주자 의자높이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연주자가 허리굽혀서 의자높이를 조절하는 촌극을 보여주는 극장의 작태는 정말이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로르티가 그 커다란 손으로 의자높이는 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민한 연주자 같으면 연주자체가 취소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연주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은 커다란 감동이였다.

로르티의 리리시즘은 쇼팽 연습곡에서 그의 빛나는 색채감각은 라벨 작품집에 잘 살아있다. 쇼팽이나 라벨에서 한곡씩만 들려주었다면 그에게 아마 절이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2.
사견이지만 이런 곳에서 바그너 반지를 초연한다고 생각하니 저 짜증나는 학교 강당 무대와 살찐 돼지 같은 홀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말 그대로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는 채워주는 격이다. 어떻게 반지의 무대를 저런 학교 강당에 올릴 생각을 했을까…

3.
좋은 좌석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눠준 희정이 누나에게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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