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저쪽 방으로 옮기면서 음악을 거의 안들었는데, 오늘은 과감하게 쪽방에 자리잡고 손 가까이 있는 음반중에서 페라이어의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를 들었다.
좋은 오디오 두고 열악한 노트북 내장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왔는데, 간만에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들어보니 참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 오디오가 좋은 시스템은 아닌데, 그만큼 노트북 내장 스피커가 싸구려라는 소리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3부작에 비견되는 이 장대한 소나타 3곡을 페라이어가 한장 가격과 멋진 자켓으로 내놓은지도 꽤 된 것 같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와서 다시 들어보니, 서정적 연주의 대명사로 통하는 페라리어의 연주는 나에게 별 감흥이 없다. 즉흥곡 연주를 기대하고 구입했지만, 즉흥곡와 이 후기 소나타들의 무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손 꼽히는 페라이어마저도 버겁게 느껴지니 말이다.
이 산만한 악장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도 어렵지만, 후기 소나타 세 곡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연주를 만들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소콜로프나 리히터의 연주처럼 폭은 깊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었던 연주가 그립다.
사실 뭐 딱히 흠잡을 곳은 없는 연주인데, 산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리히터나 소콜로프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곡을 해체해서 길에 늘여뺀 것 같았던 리히터의 연주나,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 곡이 이렇게 쉬운 곡이라 해설 해주던 소콜로프. 참 대단한 연주가들이다. 페라리어가 훌룡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은 오늘 날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리히터나 소콜로프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가들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페라이어는 소니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올 듯 싶다. 소니에서 폭삭 망해버린 펠츠만을 생각해보면 페라이어도 소니를 뛰쳐 나와야 한다. 펠츠만이 소니를 벗어나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제대로 드러낸 것 처럼 페라이어에게도 그런 시기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평론가들이 입에 침을 투기며 칭찬을 해도 내 귀에 페라이어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는 아쉽기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