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피디수첩은 지금 우리를 휩감고 있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하지만 뒷부분에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이 나온다.
노동자의 희생,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
이것은 노무현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님 바뀌어도 없는 사람 살기는 여전히 팍팍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삶이다.
기아차 모닝은 동희오토라는 기아 하청업체에서 생산한다.
이 하청업체는 전 직원이 비정규직이다.
모닝의 가격은 비정규직을 쥐어 짜 비틀어 낸 생산비절감의 대가다.
모닝을 불매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분들의 희생으로 그 차가 완성된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의 분신 모습이 피디수첩에 나왔다.
살아있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이자 명령인 생의 의지를 꺽고
한 사람이 자신을 불길로 내 던진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삶의 비극인지,
그 장면을 보면서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 짧은 장면이 나에게 생각할 틈도 없이
그 절박함에 눈물이 마냥 쏟아져내렸다.
세상의 비극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노동자는 절대적 명령인 생의 의지를 차디찬 이 겨울 시멘트 바닥에 스스로 꺽어 내리고
나는 티비 안락한 의자에 앉아 그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을 키보드나 두드리며 한탄하는 것이다.
또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잊어버릴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나를 휘감고 도는 나에 대한 절망감이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의 오늘에 대한 슬픔이다.
하느님의 공의는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라 믿고
믿음을 넘어서는 그 뭔가가 있다.
나는 이 세상의 비극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으리라 믿지만,
하느님의 섭리보다는
사람의 욕망이 하느님의 섭리를 대신하는
우리의 세상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