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거장 피아니스트 리히터(Sviatoslav Richter)의 음악과 삶의 노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비디오의 제목은 ‘Enigma(수수께끼)’입니다. 숨겨진 의미를 얼핏 가늠하기 힘든 제목이지요. 곧고 치열한 삶의 자세로는 이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럽고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독보적인 음악관으로 유명했던 노 연주가의 일생이 아직도 해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말인가요? 피아노 연주해석의 정공법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으되 특정 학파나 경향에 매인 바 없이 자유로운 그의 음악세계 어느 구석에 해결되지 못한 미스테리가 숨어 있다는 얘기인지? –이 분이 서울에서 연주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악보를 보고 치던 일, 무대 조명이 상식이하(?)로 어두웠던 것 등, 너무도 통쾌하게 제 맘에 와 닿았던 면면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온갖 고정관념을 깨며 결국 중요한 건 ‘음악‘ 그 자체이다 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보여준 그이였습니다.-
필름의 전편을 꿰뚫어 형형하게 빛나던 리히터의 눈빛은 그러나 이윽고 마지막 부분에서 다소 공허한 빛깔로 바뀌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독백처럼 말합니다.
‘나의 콘서트들이 제법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사실은 음악이 아닌 인생자체가….
너무 잦았던 미혹들….너무 많았던 불필요한 요소들….’
그러더니 거장은 자신의 머리를 두 팔로 깊숙히 감싼 채 우는 아이처럼 탁자에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오래 이어지는 침묵…………
바로 두 번 접하기 힘들 감동의 장면이지요.
신세대건 구세대건 그의 정신과 음악을 높이 추앙해 마지않는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몸과 영혼을 남김없이 던져 아무도 시비하지 못할 진실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 리히터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그렇다면 음악은 그에게 단지 ‘거울로 보듯 희미한‘ 불완전한 매체였을 뿐이란 말인가요?
그 다큐멘타리의 시작과 끝부분에서 줄곧 흐르고 있던 음악은 서른 둘 이른 나이로 홀연히 세상을 버린 프란쯔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내림 나장조‘의 2악장이었습니다. 물론 오늘 날 전설처럼 되어버린 리히터 자신의 유장한 연주이지요.
학생시절 그 곡을 연습하던 때의 딜레마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리 저리 귀를 기울여 보아도 그 이상의 무엇을 끌어낼 수 없었던 제게 당시의 선생님은 결코 재촉하지 않는 그러나 안타깝기 짝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논리적인 해석을 훌쩍 뛰어넘는 어떤 피안의 세계를 향한 슈베르트의 정신이 절절이 스며들어있는 불가해한 음악을 붙들고 한낱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이해의 수준에서 당혹해 하던 제 모습은 아주 유치한 차원의 ‘리히터의 고뇌‘와 흡사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음악은 지금 알고 있고 숨쉬고 있는 ‘이 곳‘으로부터 이 곳에는 없는 그 무엇들로 가득할 ‘그 곳‘을 향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나그네 됨을 직감하는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인 슈베르트의 소나타가 리히터의 ‘영상 자서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인 걸까요?
지난 편지에서 예술가들은 항상 ‘이 곳‘에 살면서 ‘그 곳‘을 꿈꾸는 존재들이라는 얘기를 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이 곳‘의 법칙에 충실하려 애썼고 그러나 그것은 바로 통곡을 숨긴 절제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기억하시나요? 엄격한 외형의 틀을 스스로에게 부과한 하나의 질서체계로 여긴 채 자신의 세계를 일군 그의 음악은 그만큼 안으로만 안으로만 깊어진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으로 보여줄 수 없는 내면의 말할 수 없는 고뇌와 열정은 바로 작곡가의 조국, 독일의 울창하고 치밀하기로 유명한 ‘검은 숲‘(Schwarzwald)을 닮아 있습니다. 흔히 그를 베토벤의 정신적 계보를 잇는 낭만적 고전주의자라고 일컫지만 베토벤과는 비슷한 듯 뚜렷하게 대조적입니다. 시대가 제공한 의상에 몸집을 맞출 수 없어 기어히 옷의 실밥들을 투두둑 뜯어가며 자신의 맨 살을 드러내 보인 베토벤과는 달리 시대가 입혀준 의상에 몸을 숨긴 채 끝모를 내부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 브람스. 그의 음악은 애써 맑은 정신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진한 파토스가 배후에 넘실대는 그래서 더 눈물겨운 세계입니다.
어렸을 때엔 브람스의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다는 게 맞을지 모릅니다. 일단 기존의 틀을 부정하지 않는 형식미를 철저하게 수호했다는 게 맘에 안들었었지요. 19세기 낭만의 핵심을 통과하며 쉽게 몸을 맡겨도 될 만한 시대정신에 왜 그토록 함몰되지 않으려 애썼는지 그의 융통성 없음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었습니다. 그가 특히 실내악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도 지루한 사실이었구요. 지금 음악의 정수(essence)만 모아놓은 장르를 말하라면 단연 실내악이지만 가장 재미없는 음악장르라 여겼던 한 때가 제겐 있었습니다. 시원스럽게 혹은 야성적으로 소리치지 않고 마치 ‘젖은 짚단을 태우듯‘ 안으로만 끌어안은 심화(心火)를 태우고 또 태우는 그의 음악은 또 다른 의미의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에서 삶과 인간영혼의 비밀을 고통스럽지만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단서들을 하나씩 발견해 내면서 저는 뒤늦게 해답 하나를 온전히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일찍이 삶의 온갖 기미(機微)들을 엿보아버렸고 충분히 괴로웠지만 그것에 시달려 휘청거리지 않았고 평생 해결 할 길 없는 사랑을 속에 지녔었지만 끝까지 그것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었던 브람스의 내공( 內供)……
‘대답없는 질문(Unanswered question)’ 은 20세기 음악의 정신적 선구자 찰스 아이브스가 만든 호른과 현악기들이 끝내 만나지 못할 평행선을 그으며 자기만의 질문을 계속하는 작품의 이름이지만 이미 모든 성실한 음악가들의 숙명이 되어버린 화두(話頭)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온 산을 헤매던 사람, 올리비에 메시앙은 행복했을 겁니다. 그는 새들이야말로 신의 피조물 중 가장 순수하게 그의 창조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틈만 나면 프랑스의 온 산과 들을 다니며 수천 종의 새소리를 채집 –아니 차라리 수천의 새들과 교감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지요– 그 결과 전무후무한 ‘새의 카탈로그‘(Catalogue d’Oiseaux) 라는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 메시앙이야 말로 그 옛날 새들과 자유롭게 대화했다던 ‘성 프란체스코‘의 20세기적 현존이 아니었나요?
사람은 단지 12개의 음으로 노래할 뿐이지만 신이 만드신 가장 순수한 찬양을 무수한 마이크로톤(* microtone- 반음을 더 작게 쪼갠 반의 반 혹은 그 이하의 음정들. 새들은 그렇게 운답니다.)으로 토해내는 새들의 노래는 그에게 견딜 수 없이 신비한 수수께끼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답없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들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 명징하게 둘러쌓여 있을 피안의 그가 한없이 부러워집니다.
<성서와 문화 2002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