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感(유감) – 김육(金堉)

有感(유감) – 김육(金堉)

世事不堪說(세사불감설) : 세상 일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心悲安可窮(심비안가궁) : 슬픔이 어찌 끝이 있을까
春風雙涕淚(춘풍쌍체루) : 봄바람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萬山中(독와만산중) : 홀로 깊은 산 속에 누워있다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백후(伯厚)이다.
그리고 호는 잠곡(潛谷)

 

김육이라고 하면 대동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광해군의 반대파였기 때문에 광해군의 치세 중에는 시골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살았다. 직접 농사를 짓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생을 해봐서 그는 농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위대한 까닭은 그는 그가 아는 백성의 고통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평생을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김육처럼 생애 내내 대동법 실시를 주장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김육은 대동법이 아니면 나를 버리라는 상소까지 올리며 끝까지 물러섬이 없었다. 우암 송시열 같은 얼치기 성리학자는 대동법을 반대했다. 우암 송시열이 공자 주자를 논하고 살 때, 백성들은 공납의 폐해속에서 죽어갔다. 백골 징포, 황구첨정등 별의 별 꺼리를 만들어 백성을 사지로 몰 때 김육과 같은 몇몇 사람만이 백성이 죽어가는 현실에 눈물 흘리고,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전 삶을 걸었다.

김육이 보수적인 유생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는 진정한 보수였기 때문에 백성들을 위해서 삶을 내걸었다. 우암 송시열은 동방의 주자 운운하며 나발을 떨면서도 백성의 피맺힌 고통은 외면했다. 김육의 이 시를 읽으면서 그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개인적 삶의 고통까지도.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의 내면속에는 저런 거대한 아픔과 고독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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