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고질병이 도졌는데 이름하여 회사병. 출근만 하면 발병하고 퇴근과 동시에 완치된다. 일조량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고, 지금 부서에서 오래 근무 한 것도 원인이며 꼽으려 하면 원인은 10가지는 나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년에 3,4번은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프처럼 주기를 그리며 찾아온다. 하기 싫은 것을 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 일단 발병하면 퇴근해도 휴우증이 남는다. 바로 피곤. 잠을 잘 수 밖에 없다. 저녁에 잠들면 깨어나면 새벽. 이 새벽의 정적은 나를 들뜨게 한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연습하다 습관처럼 연주하는 김광민의 곡들로 갈아타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피아노를 치고 거실로 나와보니 비가 온다. 비오는 새벽은 늘 아우라가 있다. 낮에 내리는 비는 감히 비할 수 없고 밤에 내리는 비도 근접하지 못하는 그런 것 말이다. 빗소리를 듣는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에 내리는 비.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홀로 깨어 세상을 적신다.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오웰의 에세이집을 마저 다 읽었다. 오웰이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할 무렵의 글부터 그가 병마에 남은 삶이 사그라들던 그 마지막 시기까지. 이번에 오웰의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살던 그 시대의 대영제국의 분위기를 조금이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삶의 미덕이라는 생각까지도.
자려고 누웠는데 한시간을 뒤척였다.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음악을 들었다. 에릭 사티. 사티의 곡을 들으며 그동안 그렇게 큰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알렉산드로 타로의 연주를 들으며 이 작곡가가 얼마나 재기발랄한지 깨닫는다. 음악을 듣다가 웃기까지 한다. 잠은 다 잔거지. 그렇게 또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