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삶의 본질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스무살 맹렬하게 찾아온 외로움이라는 이 감정? 아님 느낌? 뭐라 정의내리기 힘든 이 외로움에 꽤나 방황을 했다. 그 방황속에서 만난 첫사랑을 온 몸과 마음이 부서지도록 사랑했었고, 사랑이 깨진 후 그 감당 할 수 없는 절망앞에서 나의 심연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학사 경고는 누적되고 나는 나를 더욱 나 스스로의 방에 가두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삶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던 시기였다. 스무살에 시작한 외로움이라는 병은 그렇게 20대 중반을 너머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서 나는 제대로 마주 할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외로움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었다. 결국 지쳐 나가떨어질 때 즈음 외로움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겸손해야 져야 하는 인생의 수레바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겨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에 잠시 빠져있을지 모르지만 수레바퀴처럼 다시 돌아 처음으로 돌아간다. 외로움은 그런 것이다. 그 앞에 겸손해질 때 외로움은 외로움을 누릴 사치를 허락해준다. 그 사치를 누릴 때즈음 나의 삶에 행복이 찾아왔다. 외로움에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외로움에 곁은 내주고 나서야 나는 행복이라는 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취업하고 내장 산속 마을 창고를 세얻어 1년 정도를 살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전기 공사를 하고 도배 장판을 하고나니 그럭저럭 살만 한 곳이 되었다. 수도는 없어서 마을회관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화장실은 별 수 없이 숲속에서 해결을 했다. 따뜻한 시절에는 좋은 곳이었는데, 숲속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그곳에 살면서 알았다. 어느 금요일 밤에 폭설이 내렸다. 그곳에서 문을 열고 밤새 쌓인 눈을 바라보니 고립되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제설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말내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고립되었다는 그 느낌은 고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달리 나에게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그 숲속에서 세상과 떨어졌다는 느낌은 위안에 가까웠다. 지금의 그때 눈내린 그 풍경속에서 내가 느낀 그때의 평온을 잊을 수가 없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이기때문에 느끼는 삶의 평온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외로움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평생 곁에 머무는 이 친구와 사이가 안좋아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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