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고통 그것이 예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벌레의 시간’ 견뎌 세계적인 작곡가로, 진은숙 “창작은 제대로된 지옥을 경험해야 나오는 것”

작곡하는 동안 벌레 돼, 창작은 제대로 된 지옥을 경험해야 나오는 것

천문학, 수학, 기하학, 물리학을 작곡에 도입…2004년 일찌기 음악계의 노벨상 그라베마이어상 수상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 감독과 손잡고 10년 간 상임 작곡가로 현대 음악 부흥

“마침내 그녀는 한국과 전 세계의 현대음악을 연결하는 중개자로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음악계에서 진은숙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현대 음악가 조지 벤저민

“나는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을 위해 만든 진은숙의 작품들을 초연하는 기쁨을 누렸다…진은숙은 현실주의자이자 몽상가이다. 그녀의 음악은 독창적이지만 뚜렷한 연관 속에서 생겨난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다.”-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켄트 나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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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는 현대 음악 작곡가 진은숙(55세).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 겸 공연 자문위원이며 동시에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현대 음악 시리즈 예술 감독이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사진=이태경 기자

국적도 나이도 가늠하기 힘든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한 외모의 작곡가 진은숙.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국제무대에서 클래식과 현대음악계를 잇는 독보적 인물로 인정받는 그녀는, 알고 보면 한국 순정파다.

스물넷에 독일로 건너가 현대 음악을 공부하고, 일찌감치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 마이어 상(2004년)을 비롯해서 아놀드 쇤베르그상, 피에르 대공상 등을 수상했으며, 콧대 높은 해외 오케스트라가 그녀의 곡을 받으려고 2020년까지 대기 중이라지만, 진은숙은 어김없이 1년에 두세 번은 한국을 찾는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현대 음악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지난여름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 작품으로 내놓은 신작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 시향이 세계 최초로 연주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12편의 시, 혼성합창, 파이프 오르간, 어린이 합창, 대편성 관현악 등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여는 이 운명적인 대곡은 진은숙이 정명훈과 서울시향에 헌정한 곡으로, 영국 필하모니아와 뉴욕 필하모닉이 다음 연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희비가 엇갈리는 감정을 뒤로하고 독일로 떠났다 다시 돌아온 자리는, 예상치 않게 더 넓고 깊어졌다.

서울시향은 그녀에게 공연 자문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10년간 함께 했던 정명훈이 떠난 빈자리를 혼자 책임지는 일, ‘무엇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실질적인 공연 레퍼토리를 짜는 일이니,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요”라고 진은숙은 손사래를 쳤다.

가을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 뒤편 예술동을 찾았다. 워낙 여러 예술 단체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라 이리저리 헤매다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에게 길을 물었더니, 대뜸 “샹~?’하고 되묻는다. 그 말이 ‘서울시향’을 단번에 발음한 것이라는 것은 한참 만에 알아들었다.

‘샹~’이라는 발음이 주는 청량한 낯섦만큼이나, 진은숙이 기거하는 현대 음악의 세계는 우리에게서 멀게만 느껴진다.

-카오스 콘서트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강연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피아노 소리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8대가 동시에 연주해서 카오스 안의 질서를 이뤄간다든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프렉탈’에서 미세하게 의미를 바꿔 기묘한 하모니를 만들어간다든지… 구조가 필요할 때 수학적 방법이 돌파구가 된다고 말이 새롭더군요.

“수학과 기하학을 음악에 이용하면 감정이 배제된 냉정하고 논리적인 작곡을 할 수가 있어요. 논리적인 틀 안에 자신을 가두면 오히려 한계를 극복할 수가 있지요.”

-영국 로열 오페라단을 위해 작곡하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기하학적인 웅장함이 느껴져서 신선했습니다. 그 작품을 쓴 루이스 캐롤도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고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였는데, 그 구조적 패러독스에 영감을 많이 받으신 듯했어요.

“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해요. 그 작품도 어린아이들의 이야기 같은데, 그 안에 복합적 차원이 웅크리고 있거든요. 전 그런 작품이 좋아요. 모차르트 음악도 누구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심오한 세계가 있잖아요. 저도 그런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죠.”

-베를린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바흐의 곡을 동시대 현대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 진은숙의 곡을 과거 대가의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이 베를린 필의 목표”라고 한 적이 있어요. 세계 음악계에서 진은숙의 위상이 저 정도구나,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클래식은 늙었고 현대음악은 너무 젊다’라는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참 귀한 생각이죠. 베를린에 있으면서 현대 음악 층이 넓다는 데 감사하고 있어요. 바흐도 현대적으로 새롭게 연주할 수도 있고, 제 곡도 스탠더드 레퍼토리처럼 깊이를 갖고 할 수도 있지요.”

나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 음악가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예술가다운 신비로운 기운이 서린 드넓은 광대, 흑먹색 눈동자, 침묵을 사랑하는 듯한 입술. 섀도를 짙게 바른 눈에는 우울함이 깃들어있으며, 70년대 통기타 여가수를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을바람에 간간이 나부꼈다.

2015년 9월 뉴욕 타임즈는 진은숙 특집 기사에서 그에 대해 ‘1985년 24살의 나이로 독일 함부르크에 당차게 입성한 이 작곡가의 진실이 있다면 ‘끝까지 고정 관념을 배반하리라는 것’이라고 적었다./사진=이태경 기자

-중학생 시절에 20대의 정명훈 선생이 피아노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하고 카퍼레이드를 하는 걸 보고, “나는 이미 늦었구나! “하며 작곡으로 돌아섰다고 들었어요.

“네. 어릴 때 피아노를 쳤는데, 피아니스트가 못 된 게 한이죠(웃음). 그때 정 선생님 카퍼레이드를 보며 “저렇게 위대한 사람이 있는데, 나는 돈이 없어 레슨도 못 받으니 이미 늦었구나!” 싶었어요. 이화여대 음대 연습실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시면 작은 창에 매달려서 보곤 했어요 선생님(피아니스트) 리허설 구경하다 쫓겨나서 화장실로 도망가기도 했죠. 여하튼 그때부터 굉장히 동경하던 분이 정 선생님이었는데, 그런 분하고 지휘자와 상임 작곡가의 역할로 함께 일을 하게 되니 정말 꿈만 같았죠.”

진은숙은 정명훈이 자신의 작품을 지휘해준 것이 인생에 크나큰 영광이라고 했다. 정명훈은 2006년 서울시향 예술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진은숙을 상임 작곡가로 호출했고, 그는 그 부름에 응해 10년간 함께 달려왔다.

-지휘자와 상임 작곡가로 있을 때 서로 간의 호흡은 어땠나요?

“너스레를 잘 떠셨어요. “나는 현대 음악 몰라.” 하시면서요. 그런데 들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확히 알고 계세요. 이번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도 처음 들어보신 데다 합창곡도 들어가서 굉장히 까다로운 곡인데 첫날 리허설부터 수많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시더라고요. 작곡가인 저는 신경 곤두서서 패닉 상태에 있는데… 음악 전반에 미치는 그 원초적인 커넥션과 카리스마가 너무 대단해서, 가령 빠르게 혹은 느리게 끌고 가는 템포가 제가 요구한 것과는 다르면서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와! 질렸다. 나보다 내 작품을 더 잘 알고 계신가” 할 때가 많았죠.”

1962년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 집안에 사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진은숙(동생이 문화 평론가 진중권이다). 세 살 때 집안에 피아노를 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예배 반주를 맡았고, 초등학생 시절부터는 근처 예식장에서 결혼식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지인들의 축가 반주를 하면서 50원을 받았다. 당시 한 끼 식사 비용이 20원인 것에 비하면 큰돈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레슨을 따로 받는 것은 꿈도 못 꿨던 터라, 언니가 배우던 책들을 보면서 독학으로 음악 이론과 대위법을 공부했다. 그녀의 열정과 형편을 헤아린 중학교 선생님이 작곡을 권했다. “너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당시 선생님은 그녀에게 놀라운 예언을 했다.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시작해서 쇤베르크 작곡상,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 등등 현존하는 서양의 음악 대가들도 놀랄만한 권위 있는 작곡상을 거의 다 타셨어요. 오랫동안 타국에서 음악 활동을 한 ‘이방인’이었기에 상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듯싶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요. 예술가가 상 받았다고 자랑하는 건 바보죠(웃음). 예술가로서의 커리어에 큰 의미 없어요.”

-그래도 국내외에서 대접이 달라지지 않나요?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날 어떻게 대접하는지 그런 거에 신경 써본 적이 없어요. 20년 전 무명일 때나 지금이나, 상 받았을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요. 대접해주면 전 더 부담스러워요. 독일에서 오래 사는 것도 나를 유달리 대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죠. 무명씨로 사는 게 편안합니다(웃음).”

-전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에 곡을 주고 함께 음악 작업을 하다가, 1년에 두 번, 국내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환경의 편차가 커서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외국에서는 아무리 오래 머물고 활동해도 떠도는 느낌이에요. 고국에서 잠깐 머물러도 뿌리가 닿아있으니 외국 활동하는 데는 안정감을 주죠. 베이스가 있으면 작품 세계에 큰 도움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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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은 세계 최대의 음악 출판사 부시 액 혹스에서 독점 출판되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피아노, 현악, 성악 등 국제 클래식 무대에서 한국인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이가 없이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실제로 어떻게 느끼세요?

“맞아요. 국제 사회에서 받은 인정을 한국에서는 못 받는 것 같아 안타깝죠. 정명훈 선생님도 어려움을 겪으셨고…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라 더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예수님도 고향 갈릴리에서 인정을 못 받았다잖아요(웃음).”

현대 음악 또한 독일에서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했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분단 시대 ‘정치적’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병보석으로 지내던 윤이상에게 레슨을 받기 위해 찾아간 이가 강석희였고, 이후 그는 한국 음악계에 아방가르드적인 현대음악을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1982년 강석희가 독일에서 돌아와 서울대학교로 부임해 맡게 된 첫 제자가 진은숙이다.

강석희도 당시 진은숙에게 비슷한 예언을 했다. “네가 작곡한 곳은 곧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게다.”

머지않아 그 예언은 실현됐다. 진은숙이 23살에 작곡한 현대음악곡 ‘형태’가 1984년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음악제에 선정되면서, 당시 윤이상, 강석희, 진은숙 한국 작곡가 3세대의 곡이 함께 발표된 것.

-서울대 음대에서 처음엔 독일 함부르크 음악대학으로 가서 공부하다, 베를린 공과대학 전자음악 연구소로 옮기셨어요. 문득 초기에 현대 음악가로 활동하셨던 백남준 선생이 생각났습니다.

“1984년 스물 네 살에 함부르크 음대에서 4년을 공부하고 전자음악으로 넘어갔어요. 백남준 선생의 작업과는 거리가 있지만, 저는 그분이야말로 한국이 가진 놀라운 문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지금 K팝도 좋지만, 백남준이라는 위대한 팝아티스트를 우리가 한국의 간판스타로 내세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윤이상, 백남준, 정명훈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가지고 세계 무대로 나가면 그게 진짜 한류가 아닌가…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곡하신 곡을 보면 그 제목이 참 인상적이에요. ‘기계적 환상곡’ ‘말의 유희’ ‘사이렌의 침묵(2014)’도 그렇지만,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2016)’도 반어적인 댓구의 힘이 무척 강렬합니다.

“제목이 곡의 50%를 차지해요. 제목이 주는 인스퍼레이션이 정말 중요하죠. 제 음악이 한국 청중은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바깥에서는 듣기 쉬운 축에 속하거든요. 저는 천문학과 수학이 주는 그 혼돈과 질서에 관심이 많아요. 우주가 형성되던 그 시점을 상상하면 많은 영감이 떠오르지요(웃음).”

-진은숙의 음악은 언어와 수학, 공학과 천문학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사이렌의 침묵’은 소설가 카프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으셨다고요.

“네. 사이렌의 노래는 무엇이든 다 뚫고 들어가서 유혹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사이렌이 침묵할 때라는 거죠.”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도 ‘인간은 곧 별이 낳은 아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거죠?

“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와 인간의 모든 기초가 별의 폭발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인간이 곧 별의 아이들인 거죠. 그런 관점에서 지구를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은 일들이 많아요. 민족, 인종, 좌파, 우파 갈라져서 싸우지만, 우린 오리진이 같고 똑같이 한 배를 타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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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두 차례 현대 음악 프로그램 아르스노바를 진행하기 위해 서울을 찾는 진은숙.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이 충만하다./사진=이태경 기자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지난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 공연으로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시향과 초연을 했어요. 그 곡은 영국 필하모니아와 뉴욕 필도 공동 위촉한 곡이라 2018년, 2019년에 이어서 연주할 텐데, 해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 곡은 2012년에 위촉을 받았는데, 쓰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어요. 너무 많은 혼란을 겪으면서 마음이 극심하게 괴로웠거든요. 12곡 40분짜리 제대로 된 곡을 만들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어쨌든 해냈고 초연을 지켜보면서 감개가 무량했어요. 곡마다 조금 다르지만, 아마 개작을 좀 거칠 듯합니다.”

-슬럼프가 있었나요?

“개인적인 슬럼프라기보다는 서울시향과 관련된 대내외적 잡음 때문에 괴로움이 컸죠.”

잡음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로부터 시작됐다. 2014년 12월, 박 전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폭언과 성희롱 발언 등에 시달렸다는 서울시향 직원들을 대신해 정명훈 전 감독이 나섰고, 그를 박 전 대표가 명예훼손 등으로 다시 고소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 정명훈 감독은 예술 감독직을 사임했고, 지난 9월부터 도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명예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향을 생각하면 밤에 자다 혀를 깨물고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10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직원들이 분신처럼 여겨졌던 터라…, 세상에 태어나서 겪어본 적 없었던 큰 분노를 느꼈어요. (한숨을 쉬며) 그걸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고요. 얼마나 힘들면 매일 밤 곡을 의뢰했던 사람이 “그 곡 취소했습니다”하는 꿈까지 꿨을까요(웃음).

그런데 그럴수록 작품에 대한 애착과 의지가 더 강해져 갔어요. 아무튼, 이젠 많이 정리했어요. 머릿속에 방 하나를 마련해서 그런 괴로움을 전부 털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죠(웃음).”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는 남편 되시는 마리스 고토니(핀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씨가 120편의 우주 대서사시를 모아주고 거기서 12편을 추렸다고 알고 있어요. 평소에도 그렇게 협업을 하나요?

“남편은 피아니스트지만, 어릴 때 시집을 낼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해요. 제가 시간이 없으니 남편이 나서서 도서관 다니면서 수집을 해줬어요. 그걸 보면서 문학 세계도 음악만큼 깊구나, 저 깊은 생각을 어떻게 저렇게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을까 많이 배웠죠.”

-발레리나 강수진 씨 남편 툰치 씨처럼, 남편이 매니저 역할을 하는 셈인가요?

“그렇죠. 외조를 많이 받아요. 제가 메일 체크조차 직접 할 수 없을 만큼 바쁘니…, 제 일을 함께하는 게 남편의 전업이 됐어요(웃음).”

-부부 사이의 역할도 그렇고, 이국적인 외모부터 독일에서 오래 활동한 예술가라는 점에서 발레리나 강수진 씨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껴졌어요.

“(놀라며)강수진 씨는 정말 아름다워요. 댄서로서도 훌륭하고, 프로페셔널하죠. 남편하고도 인생 동반자로 잘사시고.”

-진은숙 선생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던데요. 연하의 남자와 예술적 동지애를 나누셨지요?

“보통 사람이었다면 상상을 못 했을 거예요. 남편과는 여러 면에서 교감이 있었어요. 일상에서도 우리는 항상 음악 얘기를 해요. 어쩌면 지금은 24시가 붙어 있으면서 일을 쉴 틈이 없어요(웃음). 밥 먹고 설거지 하면서도 서울시향 문제를 얘기하고 있어서, 아예 음악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을 정해야 하나 하고 있어요.”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뭉개진 발가락은 이제 예술가의 고행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는데요, 작곡가도 그 못지않게 창작 과정의 고됨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알고 있어요.

“춤은 신체를 쓰니까 발가락이라는 형태가 보이는 데, 저흰 머리를 쓰니까(웃음).”

-그렇다면 뇌가 일그러진 모양?

“20대부터 곡을 쓰고 나면 머리가 하얗게 세요. 피부도 발바닥도 다 갈라지고, 일찍부터 스트레스로 고혈압을 앓죠(웃음). 허리도 망가지고,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폐경도 일찍 온답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네요. 그래도 작품을 쓰고 나면 행복하시지요?

“행복한 순간은 거의 없어요. 보상도 없죠. 유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그걸로 그 고통이 보상되진 않아요.”

-작곡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유기적 생물학적으로 사고한다고나 할까요(웃음). 가장 먼저 씨앗이 될만한 엘리먼트를 정하게는 힘들어요. 어떤 예술가는 부처 그림 그리고 눈동자 찍듯, 마지막 터치에 비밀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아니에요. 첫 음을 딱 쓰면 이게 ‘기다 아니다’가 딱 와요. 느낌이 강하게 오면 거기서부터 유기적으로 구조를 만들어가는 식이죠.”

-어린 시절을 개척 교회 목사 아버지 밑에서 보냈는데, 그 경험이 음악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보통 목사님들 자녀가 좀 삐딱하게 가는 경향이 있어요(웃음). 저는 종교에서의 신은 믿지 않고요, 오히려 과학에서 존재의 위치로, 그 의미가 있다 없다, 를 추론하는 걸 즐기죠. 교회라는 장소는 3~4살 때부터 피아노가 있는 공간, 제가 예배 반주를 했던 공간이다, 라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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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음악과 현대 음악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는 진은숙. 현대 음악이 실험적 음향에 집중한다면 그녀의 음악은 화성과 사운드가 만나 놀라운 입체 구조를 이룬다./사진=이태경 기자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지요?

“저한테는 거의 신경을 안 쓰셨죠(웃음). 아버지가 교육열이 꽤 높으셨는데, 4남매 중에 유독 제 언니에게(음악 평론가 진희숙) 관심이 많으셨어요. 언니는 먼저 음악 공부를 시작해서 노래도 공부도 들볶였는데, 저는 오히려 천덕꾸러기였어요. 그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IQ검사지를 갖고 오셔서 체크를 했는데 나중에 결과표 받아보시고는 제 것은 짝짝 찢어버리셨어요(웃음). 아마 동생 진중권(동양대 미학과 교수)이 엄청 높게 나왔었던 거로 기억해요.”

그녀의 진술과는 달리 서울대 음대 동창인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대학 시절 진은숙이 “바흐의 첼로 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가 그대로 옮겨 적어서 동기들을 절망시켰다”고 증언했다.

-작곡은 거의 천재들만 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아휴. 아네요. 저는 제가 머리 좋다고 생각 안 해요.”

-작곡가로 산다는 것을 무엇에 비유하시겠어요? 플레이어도 지휘자도 아닌, 무대 뒤의 사람이지만, 어쩌면 영원불멸의 존재이기도 하겠지요?

“삶 자체가 멋있지는 않아요. 시간의 심판을 받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걸러지는 식이니까요. 아쉬운 건 한국에서는 유독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중에 작곡가를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제 스승이신 서울대 음대 강석희 교수님이 한때 그런 풍토를 지적하며, “시인과 시낭송 자가 있는데, 시 낭송자에게 계속 문학상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하셨어요.

작곡가는 살아생전 연주자보다 칭송받는 작품을 내놓기가 참 힘들어요. 비평도 연주자들에게 집중이 돼 있죠. 그런데 스타 연주자들은 맘이 편하냐? 그렇지도 않아요. 전문가들도 단 몇 마디만 가지고 틀렸네, 잘 못 했네 말들이 많거든요. 다분히 자기 과시적인 내용이 많죠.

그러다 보니 연주자들도 조급해져요. 무대에서 카리스마가 지나쳐 개인 에고를 프리젠테이션하기 시작하면 금방 티가 나요. 다들 음악에 대한 경외감이 좀 더 있으면 좋겠어요.”

진은숙은 음악을 포용하고 향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클래식의 역사가 짧아서인지, 한국인 특유의 조바심과 적극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난리 치는 게 음악의 정수와는 맞지 않다’는 것. 그녀의 말대로 심판자는 시간이고, 그 시간 속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걸러질 테니 말이다.

-살면서 언제 가장 긴장하십니까?

“작품이 초연될 때는 늘 긴장해요.”

-일과는 어떻게 되시죠?

“항상 작업을 해요. 틈틈이 살림하고요. 김치 볶음밥도 하고, 녹두빈대떡도 부치고,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으니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음악 듣고 곡 쓰고… 일상이 뭐 특별한 게 있나요.”

-그런데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 허투루 쓰지 않으십니다. 즉흥적인 영감이 아니라 엄격함이 아름다움을 낳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엄격해야죠. 낭비하는 걸 싫어해요. 작곡도 일상생활도. 그런데 20년을 독일에서 집 밖으로도 안 나가고 작곡만 하니까 남들이 괴상하게 보긴 하더라고요(웃음). 그런 제가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걸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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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한국인으로 베를린에 살지만, 진은숙의 뇌는 진작 부터 우주 어느 한켠에 집을 짓고, 웅크린 채 미래에 고전이 될 악보를 쓰고 있다./사진=이태경 기자

-보람이 있으시죠?

“그럼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일하는 기쁨보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날로 성장하는 걸 보는 기쁨이 정말 커요. 제가 독해서 잘 안 우는데, 얼마 전 서울시향이 롯데콘서트홀에서 제 곡 ‘별들이 아이들의 노래’를 초연하는 걸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가 다시 한번 꿈꾸는 듯 아스라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과거 10년간 정명훈과 함께 서울시향을 베를린 필처럼 다층적인 깊이를 갖춘 도전적 오케스트라가 되도록 이끌었다. 젊은 현대 음악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실험적인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는 갈수록 대중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다.

연주자들은 오선지 위에 튼튼하게 뿌리 내린 안정적 음표를 뒤따라가며 브람스와 모차르트와 바흐와 스트라빈스키의 웅장한 세계와 만나는 기쁨도 누리지만, 동시에 사운드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으로 악보 위를 질주하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표에 맥박과 혈류를 더하며 전위의 흥분도 느낀다.

그리고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진은숙이 작곡한 ‘3개의 협주곡(도이체 그라모폰)’을 연주한 음반으로 2014년 국제클래식 음악상과 BBC뮤직 매거진상을 받았다.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의 3박자가 만들어낸 놀라운 쾌거였다. 당시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전 언론은 진은숙을 주인공으로 보도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CD ‘3개의 협주곡’으로 클래식 음악상을 받았을 때 무척 행복했겠습니다.

“(손을 내저으며)아니에요. 그 상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주는 상이에요. 다들 나한테 축하한다고들 하는데, 마치 베토벤 곡으로 상 받았다고, 베토벤에게 축하한다고 하는 거나 같아요(웃음). 상 받은 건 영광이지만, 그 CD는 연주가 너무 좋았어요.”

또다시 겉치레와 칭찬을 싫어하는 진은숙만의 독일식 화법이 이어졌다. 결론은 나는 해야 할 일을 했고, 그건 당연한 일일 뿐이었으며, 그 영광의 자격은 정당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

-영국 로열 오페라단이 위촉한 ‘거울 뒤의 앨리스’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요?

“캐스팅 중이고 감독과 조율 중이에요. 현실의 이야기와 꿈속의 이야기 두 개가 뒤틀리면서도 대비가 되니까 어려워요. 극작가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캐릭터나 이야기는 음악으로 큰 가닥을 잡아줘야 하니까요.’

-작곡할 때 스스로 버러지가 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작곡하기 전에도 힘들지만, 완성하고 나서는 창피해서 딱 죽고만 싶죠.”

-대중 앞에 나서는 창작자들은 그래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곤 합니다. 자기 비하를 견디는 방법으로 나르시시즘은 꽤 유용하거든요(웃음).

“제 동료 중에도 언론의 호평을 100배 확대해서 걸어두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제 방식은 아니고요. 저는 스스로 비판적이고 거리를 두려고 해요. 자살을 안 하고 살려니 그게 힘들긴 하지만, 창작자는 안팎으로 향하는 그런 괴물 같은 에너지를 견뎌야죠. 스스로 몬스터가 돼야 해요.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세상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정도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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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국 로열 오페라단네서 위촉한 ‘거울 뒤의 앨리스’ 세계 초연을 앞두고 있는 진은숙/사진=이태경 기자

-스케줄은 언제까지 정해져 있나요?

“작곡 위촉은 2021년까지 차 있고, 연주회 일정은 2019년까지 차 있어요.”

나는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들을 때 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라는 어마어마한 구절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곤 했다. 흑암을 깨는 명령 ‘빛이 있으라’와 ‘빛이 있었다’는 창조 사건 사이에 존재했을 알파와 오메가의 시간. 순간이면서 영원인 그 시간은 앞으로도 온전히 시의 시간이고, 음악의 시간이다.

동시에 진은숙의 표현대로 라면, 몬스터의 시간, 지옥의 시간, 자학으로 꿈틀대는 벌레의 시간이기도 하다. 끔찍한 지옥을 버티고, 벌레의 시간을 지나면, 비로소 어둠의 카오스를 뚫고 음악이라는 찬란한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된다.

한국인으로 베를린에 살지만, 진은숙의 뇌는 진작 부터 우주 어느 한켠에 집을 짓고, 웅크린 채 미래에 고전이 될 악보를 쓰고 있었다. 틈틈이 빈대떡도 부치고 청소도 해가며. 그와 동시대에 산다는 것이 기쁘다.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kimjisu@chosunbiz.com]

출처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366&aid=0000345466

 

그녀의 인터뷰를 읽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을 엿보았다. 그 길고 지리멸렬한 고통을 내가 짐작 도 할 수 없겠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 위대한 영혼들의 전통. 그 고통의 전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 영혼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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