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에게 사랑이란?

히브리어에는 숫자가 없다. 그래서 각각의 문자가 그에 해당하는 숫자를 같이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각각의 글자에 해당하는 수의 값은 ‘자연’이라는 글자의 수의 값과 같다. 이런 히브리어 글자와 수의 관계를 심화시킨 것을 수비학이라고 한다. 수학에서 이야기하는 수비학과는 다르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수의 값은 ‘하나’라는 단어의 수의 값과 같다.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IVF 소그룹 시절 누나가 나에게 해 주었던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랑이란 삼각형과 같아서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양끝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치해 하나님에게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명쾌하고 선명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은 말인지 모른다.

사랑이 하나라는 수의 값과 같다는 말을 듣고 삼각형이 생각이 났다. 기독교인에게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서로가 가까워지는 삼각형이다.

너무 종교적으로 사랑을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스물한 살에 기독교라는 이 종교에 나의 뼈를 묻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나는 기독교라는 오만과 편견에서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비록 허울뿐인 기독교인지만 내 핏속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그 은혜로부터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입은 가장 큰 은총은 바로 내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 지금까지 살면서 이 것보다 더 큰 기쁨과 은총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사람은 희망과 사랑을 꿈꾼다. 오늘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요즘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 나를 흔드는 저 많은 바람, 내 앞에 놓인 작은 시련 많은 것이 얽히고 얽혀서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다.

그 한복판에서 오늘 밤 나는 사랑을 꿈꾼다.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내게 주어질 영원한 사랑을… 언제나 시련과 아픔이 우리를 성장시키듯이 사랑은 언제나 참고 인내하며 우리를 그 시련에서 지켜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내게 주어진 소중한 가족과 인연,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