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강렬한 태양은 사라지고 볕 좋은 곳에 앉아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좋은 그런 날이 가을. 태양이 힘을 잃어버리니 온세상도 같이 힘을 잃는다. 부지런한 나무는 벌써 옷을 갈아 입는다. 여름날 세상을 다 덮을 듯한 초록의 기세 대신 강렬한 원색으로 세상을 채우지만 그 화려한 색깔의 뒤에는 쓸쓸함이 진하게 베여있다. 햇빛이 따스하고 숲과 거리의 풍경이 화려해져도 그것은 마지막 성찬과 같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가을은 쓸쓸하고 겨울은 외로운 계절이다. 가을의 풍요는 여름의 선물이고 겨울을 나기 위한 성찬이다. 나는 가을이 달갑지 않다. 가을이 좋은 점은 그래도 겨울보다 낫다는 것. 겨울의 문턱인 가을이면 서리처럼 마음도 내려앉는다. 지나치게 차분한 마음은 제자리를 좀처럼 찾지 못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뫼르소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태양때문이다. 태양이 기운을 차리는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나겠지. 늘 그러했듯이 반복되는 탈피의 과정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성장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이런 것. 나의 외모는 늙어가지만 나의 마음은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