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신이 용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신도 회개하지 않는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전병욱은 스스로 용서받았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상당수 기독교인이 이런 삶을 산다. 하느님이 용서하셨으니 나는 이제 새사람.
하느님의 용서에는 구별이 없고 차별이 없다. 아무리 큰 죄도 회개 앞에 용서받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것이 인간과 비교되는 신의 자비이고 사랑이다.
그 용서는 누군가에게 써준 차용증을 소각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전과 이후를 구별하고 어둠과 빛을 구별하는 신의 사랑이다. 그렇게 때문에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 받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야하는 삶의 강제가 아닌,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예외가 있다면 전병욱 목사 같은 사람. 이신칭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인데, 전병욱은 스스로 의롭다 함을 칭하는 자칭칭의자가 되었다. 이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듯. 기독교를 스스로의 의로움과 용서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이 사람에게 신의 용서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