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560돌 나랏말쌈 넘어 세계인의 언어로


한글 560돌 나랏말쌈 넘어 세계인의 언어로…
[커버 · 한글, 세계로 간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빛나는 민족유산 성장동력 삼아야

언제부턴가 우리 뇌리에서는 한글날이 지워져 있었다. 물론 10월 9일이 한글날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이 클 터이다.

나라에서 국경일과 기념일을 정하는 것은 그 날, 그 대상의 의미와 교훈을 국민 모두가 한번 더 가슴 깊이 새겨두자는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족 최대의 유산인 한글과,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뜻을 먼지 쌓인 창고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올해 훈민정음 창제 560돌을 맞아 한글날이 국경일로 부활하기까지 지난 10여 년간 세계는 한글의 탁월성과 과학성에 탄복해 왔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런 양 치부하며 오히려 영어와 일어, 중국어를 떠받들기에 바빴던 게 사실이다. 이에 주간한국은 국립국어원과 공동기획으로 ‘한글, 세계로 가다’ 특집을 마련, 반성과 재발견의 뜻을 담아 우리말의 현주소와 과제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해봤다. /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전 세계의 언어는 어림잡아 6,000여 종이 있다고 하는데 문자는 10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중에서 한글은 다른 문자와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영국의 언어학자 샘슨(G.Sampson)은 한글이 여러 문자 가운데 과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문자이므로 문자 체계를 따로 설정해야 한다고 하며 ‘자질문자’(字質文字, featural writing)라는 표현을 썼고, 네덜란드 언어학자 보스(F. Vos)도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하였다. 한글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 첫째, 자형(字形)이 매우 조직적(組織的)이며 같은 계열의 음성은 서로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한글은 만들 때부터 기본자(基本字)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나머지 글자를 기본자에서 파생시켜 이원적(二元的)인 구성을 이루도록 하였다. 또한, 음성적으로 같은 계열에 속하는 것이면 그 글자 모양에서도 서로 공통점을 갖도록 하였다. 가령, ‘잇소리’(齒音, 치음)를 나타내는 ‘ㅅ, ㅈ, ㅊ’을 볼 때 대표음 ‘ㅅ’을 기준으로 서로 형태가 비슷하도록 만들었으며, 이중 모음 ‘ㅑ, ㅕ, ㅛ, ㅠ’를 볼 때도 대표음 ‘ㆍ(아래아)’를 기준으로 서로 조합을 하여 공통점을 갖도록 하였다. 이것은 다른 문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조직성을 갖는 문자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둘째, 창제 과정이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자음자(子音字)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고 모음자(母音字)는 하늘, 땅, 사람을 본떠서 만들었다. 어떤 글자를 만들면서 그 글자가 대표하는 소리를 발음할 때의 발음 기관과 관련시켜 만들겠다는 생각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한글 창제 과정을 설명한 ‘제자해’(制字解)의 해설을 보면 그 당시 한국의 음성학이나 음운학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 한국어의 음성과 음운 구조에 대한 분석이 매우 정확하고 치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령, ‘ㄱ’자와 ‘ㄴ’자의 제자(制字)원리를 보면 이 소리가 발음될 때 혀끝이 목구멍을 막는다고 한 것은 혀 뒤쪽이 연구개에 가 닿아 숨의 통로를 막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혀가 윗잇몸에 닿는다고 한 것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때 ‘ㄱ’을 소리 낼 때는 혀 뒤쪽이 입천장까지 올라가므로 혀 앞쪽은 자연히 내려오는데 ‘ㄱ’자는 바로 그러한 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며 ‘ㄴ’을 소리 낼 때는 반대로 혀 앞쪽이 윗잇몸에 가 붙으려니까 혀 뒤쪽이 처지게 되는데 ‘ㄴ’자는 바로 그러한 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한글은 다른 문자를 모방하지 않고 새로 만들어진 문자 즉 ‘신제문자’(新制文字)라는 것이다. 비교적 후대에 만들어진 한글은 기존의 어떤 문자를 오랜 세월에 걸쳐 변모하거나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한 시기에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다. 남의 나라 글자를 차츰차츰 변모시켜 만들지 않고 전적으로 새 체계의 문자를 만드는 일은 문자 발달사에서 많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한글이 한국의 주변에 있는 기존 문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체(字體)가 네모 반듯한 것은 한자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다. 가령, ‘ㅁ’이 입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나 입 모양을 꼭 네모 반듯하게 만들 필연성은 없다. 또 ‘ㄱ, ㄴ’도 완전히 직각이 되게 만들었는데 혀의 모양이 이처럼 직각으로 구부러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아마도 한자의 전체적인 형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러나 적어도 한글은 일본의 ‘가나’처럼 전적으로 남의 문자(한자)에 의존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넷째, 한글은 자모를 음절 단위로 묶어 다시 한 자로 만들어 쓰는 특이한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를 모아쓰기라고 한다. 한글은 자음자와 모음자를 분리해서 음소 문자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음절 단위로 묶어 운영되는 문자이다. 이처럼 모아쓰기를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문헌은 으레 한자와 한글이 섞여 쓰였고 또 한자에는 한글로 한자음을 다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때 한자 하나에 한글도 한 글자의 꼴로 나타내는 것이 한글을 풀어 썼을 때보다 어울렸을 것이다. 가령,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도 ‘訓民’을 ‘ㅎㅜㄴㅁㅣㄴ’으로 표기하는 것보다 ‘훈민’으로 표기하는 것이 서로 관계를 쉽게 연결시킬 수 있어 좋았을 것이다.

그 밖에 한글은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자유롭기 때문에 책 등에 글자를 쓰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고 자모의 합성이 매우 규칙적이며 자모가 한 음절 글자 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적 위치가 매우 규칙적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있는데, 한 음절 글자를 쓸 때에 종성 자모는 초성 자모에 다시 쓰며 종성은 임의적이지만 초성과 종성은 필연적이므로 음절 글자를 구성하는 방식이 매우 규칙적이다.

이처럼 한글은 다른 문자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문자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이구동성으로 극찬하고 있다. 이것은 한글이 한국어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한글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한글은 그 창제 연대와 창제자가 분명한 문자이다. 세종실록 권 102 세종 25년 12월조에 “이 달에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시었다. (···)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세종대왕이 친히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에 지었으며 그때의 문자 체계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글날은 ‘문화 국경일’

이 사실은 같은 실록 권 113, 세종 28년 9월조에도 실려 있고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끝에 실려 있는 정인지(鄭麟趾)의 서문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하시었다.(癸亥冬 我殿下 創制正音二十八字 (···) 名曰訓民正音)” 이것은 세종대왕께서 집현전(集賢殿)의 학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새 문자 체계에 대한 해설서를 짓게 하였는데 이것이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上澣, 즉 상순)에 간행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오늘날 우리가 한글이라고 고쳐 부르는 글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을 인정하여 유네스코(UNESCO)에서도 ‘훈민정음’을 1997년 12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우리 정부도 그동안 단순한 기념일로 취급하던 한글날을 2005년 12월에 국경일로 정하였다.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우리 민족이 문화 민족임을 국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5,000년 역사의 한민족이 우리의 고유문자 ‘한글’을 만든 날을 떳떳하게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에게도 문화 국경일이 제정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3·1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이 있지만 문화 국경일은 없었다. 한글날이야말로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국경일이다.

셋째,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본받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글을 만드신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정신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섬긴다면 정말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최용기 국립국어원 국어진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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