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 벽

계급의 벽은 하루 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 아내가 돈가스 먹고 싶다해 배달 시켜 먹는데 요즘 배달은 퀵이 전담하는 추세. 퀵 배달온 사람은 역시 내 기준에서는 애.

계급의 벽은 잔인해서 한창 대학 다닐 애가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몬다. 이게 현실. 배우고 있는 집 애들은 퀵을 시키지 퀵을 배달하지 않고, 대학 도서관에서 잠자지, 공장 바닥에서 자지 않는다.

예전 신입사원 연수원 동기와 통화하면서 공무원 학원에서 일하는 근로 장학생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다고 했더니, 형 주변에 그렇게 일하는 애 있어요? 그거 티비에서나 나오는 경우에요.

이 대화에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견고한 계급의 벽속에서 내가 살고 있었고 그걸 실감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회사에서 금요일마다 열리는 무료 급식에 나가보면 정읍에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란다. 나갈 때마다 놀란다.

나 같은 사람은 급식봉사나 나가야 만날 수 있다. 내가 그렇다고 높은 계급도 아닌데. 나보다 더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성에서 살고.

그렇게 계급은 벽을 만들고, 소통을 차단하고, 약자는 더욱 더 높은 벽 아래로 몰아간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고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는 산업현장에서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죽는다. 김훈의 지적처럼 없는 집 자식들은 국회의원 고관대작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경제논리에 맡기면 이것은 해결 되지 않는다.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로 풀어야 하는 것인데, 정치논리는 경제논리를 이기지 못한다.

퀵서비스 택배 종사자들이 받은 처우를 봐라. 여기에 노동자에 대한 최저 근로조건, 최저임금 이런 것들이 들어갈 틈이 있는지. 경제논리는 아주 정교하고 치밀해서 정치논리가 파고들어갈 틈이 없다. 이 말은 정치가 법이라는 강제를 들이대지 않으면 개선이 없다는 것.

우리 사회는 우리는 과연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접하고 있을까. 법이라는 강제를 들이밀 때 우리 사회는 이것을 용인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까.

정치를 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정치를 결정하는 건 결국 개개인의 시민. 우리의 시민 의식이 노동자는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는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정치도 없고, 노동자는 계속 죽어갈 것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 될 것 같다고? 법과 제도의 정비로 늘어나는 비용과 비효율이 가져올 경제적인 부작용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까?

좌는 왜 빨리 가지 않냐고 성화고, 우는 왜 경제논리를 무시하냐고 성화고. 손해보지 않는 성장. 그런 뻥이나 치고 자위하고 있는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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