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미켈란젤리 단상

어제 밤에 은우 목욕시키고 분유 먹이고 재우고
3층에서 책을 좀 보고 일기 쓰고 이러고 있다 이번에 새로 리패키징 미켈란젤리 드뷔시 음반이 눈에 들어와 시디피에 올려보았다.

미켈란젤리의 음반은 기계적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뭐가 다를게 있나 싶었지만, 새로운 리마스터링의 결과때문인지 이전과 다른 청각적 감응을 불러온다.

이전보다 명확하게 타건 반응이 전달된다고 할까. 페달링이 가져다 주는 풍부한 음향효과 그 정반대에 서 있는 미켈란젤리.
미켈란젤리의 색깔은 핑거링보다 페달링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음색에 대한 극도의 컨토롤을 추구했던 그도
나이가 들수록 조심씩 느슨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템포는 아주 조금 느려지고 이전의 빙하 같던 음색은 그래도 조금 따스해진다.

이때 녹음이 전주곡
역사상 최고의 드뷔시 음반으로 회자되지만,
나 같은 미켈란젤리 매니아에게는 젊은 날의 그 서슬퍼런 연주가 열악한 음질로 남아있는 것이 아쉽다.

DG에서 녹음한 미케란젤리 녹음은 대체로 다 이시기.
그래서 접근하기가 좋다. 젊은 날의 날카롭고 차가운 음색이 어떤 면에서 따스해지고 다른 면에서 퇴색해지는 시기기 때문.

미켈란젤리의 전성기라 부를 수 있던 시기의 기록은 대체로 녹음이 아쉽다. EMI에서 녹음한 음반들이 그의 전성기 시절인 것이 그래서 아쉬움.

TESTAMENT에서 재발매한 EMI 모노 음원은 전성기 시절 미켈란젤리가 얼마나 무서운 피아니스트였는지 보여준다. 젊은 날의 깐깐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 음악에도 그대로 투영.

신체와 정신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던 그 시절. 빡빡해서 바늘하나 들어갈 수 없는 음악이 뭔지 그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스투디오 레코딩이 아닌 실황녹음에서 미스터치? 더 나아가 음색 한 구절도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음악을 들려준다.

이 시절 그의 음악은 칼날처럼 날이 바짝서있는 음악이다. 호불호를 떠나 악보를 재현하는 연주사있어 한 정점을 찍은 음악.

20대시절부터 말년의 녹음까지. 신체의 퇴화에 대응하는 음악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고, 그 가운데 절대적 완벽성에 집착하던 음악가가 어떻게 자신과 타협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지 지켜볼 수 있다. 그 타협의 과정속에서 미켈란젤리가 겪었을 고통을 나는 조금 짐작한다. 스위스에 은거하면서부터 술이 늘고 밤새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던 것도.

나는 이 피아니스트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이 드뷔시 음반이 어제 밤에는 새롭게 들린 것을 보니. 내가 왜 짐머만을 좋아하는지 개연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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