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습관

한자병기. 한자교육. 하면 다 좋지. 세상에 배워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공교육에 한자를 강화해서 말과 글 생활이 나아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말은 지배당하지 않는다. 말의 습관은 항상 변화하고 그 변화의 모습 또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사람이 생물이듯이 말도 생물이고 말을 적는 글도 그래서 생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 또한 앞으로 어떠한 형태를 띄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지금의 관점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생각한다. 지금 세대의 말과 글 사용이 옳은 줄 착각한다. 어린 세대의 말글 사용에 대해서 통탄을 한다. 그 말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옳건 그르건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말과 글은 그런 것이다. 잘못되면 잘못된대로 잘되면 잘되는대로 언어대중의 습관이 결국에 결정할 것이다. 한자 몇 자 더 가르치고 한문교육 강화한다고 해서 나아지거나 변화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어린 세대의 말글 생활이 우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걱정하며 언어의 퇴화까지 염려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대는 분명 우리보다 나은 언어생활을 영위하고 또 발전시킬 것이다. 인간이 진화한다면 말과 글 또한 같이 진화한다.

그럼 즉흥적이고 즉물적인 언어생활을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 답은 쉬운 말을 사용하고 쉬운 글을 쓰는 것이다. 사고의 깊이는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문장구조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말과 글을 통해서 점차 심화되어가는 과정이다. 함석헌이 권정생이 어려운 말을 몰라, 어려운 글자를 몰라, 말과 글을 그렇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점의 대부분은 본인 생각하는 피상적이고 복잡한 문장구조에 대한 자부심에서 시작한다.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을 완성해 내고 그 속에서 자기 위안을 찾는다.  결국 먹물이 먹물의 티를 벗어나지 못해서 말글이 오염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말과 글은 쉽게 쓰여져야 하고 보다 넓은 언어대중에게 접근이 가능해져야 다양한 표현과 접근이 가능해진다.

늙어 한글을 배운 어머님들이 쓴 시를 읽다보면 어려서부터 수만권을 책을 머리속에 집어넣은 지식은 쓸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글자는 책속에서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한자만 떼어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글자가 글을 이루며 생명을 얻어가는 과정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창조과정이다.

나는 알파벳과 한자의 경쟁에서 한글이 어떤 지위를 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말은 한글을 통해서 가장 우리 말다운 형태를 띄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결말 또한 역사의 과정처럼 진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잡담

잊혀진 천재 코른골트.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음악, 오페라 죽음의 도시. 모두가 현대를 향해 돌진하던 시대에 그는 반대의 길로 걸었고, 그렇게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지.

하루 하루 지나가는 일상. 나도 이제 나이를 헛먹지 않았는지 앓이 한 번 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 이렇게 말야. 오늘 종일 이소라의 눈썹달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봄을. 봄… 여름이 가고 가을오면 돌아올 수 있을까요…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오면 손 닿을만큼 올까요…

뭔가를 블로그에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앉아 쓰려고 하면 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를 다시 들어봤다. 기괴한 이야기 전개속에서도 선율의 아름다움은 폭발한다.

외할머니가 결혼할 여자만이라도 데려와 할머니에게 인사하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들을 때는 한귀로 흘렸지만, 집에 돌아오니 귀속에서 맴돌고, 할머니를 향한 말 할 수 없는 그리움과 상념이 밀려온다. 눈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면 난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거야.

헐리우드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8살에 오페라 단막극을 작곡한 이 천재는 그렇게 그저그런 음악가로 남기를 원치 않았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후기 낭만주의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자기 발자국을 남겼다.

다시 이소라의 봄을 반복해서 반복해서 듣는다. 봄이라고 보고 싶고 보고 싶어서 봄. 생각이 나고 때때로 마음도 그립다. 온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초록으로 물들 때, 나의 이 슬픔도 이 계절이 주는 위안에 찬란해진다.

가끔 코른골트는 왜 자신의 천재성을 불화, 시대와의 불화로 소모했을까. 충분히 시대에 부응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시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세계대전이라는 이 거대한 시대의 불운이.

머리를 다시 짧게 깎았다. 왜 깎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깎고 싶었어. 후회할 것 알면서도 깎았고, 깎고 나서 다시 후회한다. 우리네 삶하고 똑같네. 후회할 줄 알면서 후회한다.

코르골트도 라흐마니노프처럼 자신의 대륙을 떠나 신대륙에 정착하면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힘들어 한 것이 아닐까. 라흐마니노프는 창작곡을 한 곡도 작곡하지 못했지. 코른골트는 그보다야 낫지만, 그도 역시 그의 영감의 원천인 자신의 땅을 그리워했을거야.

사랑을 생각한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제는 스물 한살의 나는 다 사라지고 아저씨 한 사람만 서 있다. 얼마나 행복한지 알면서 얼마나 아픈지도 안다. 그래서 이제는 불나방처럼 불길속으로 뛰어들지 못한다. 슬프지만 난 이제 늙어버렸어. 나를 더 태울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슬프지만 그것이 진실. 하지만 다 나쁜 것만은 아냐. 더 태울 것이 없어진 후에야 나는 재만 남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어.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같이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 프리드리히 실러 –

읽고나서 공감이 간다. 다만 현재는 화살같지만 고통속에서는 시위를 떠나지 않는 화살.
하지만 지나면 과거가 되고,
과거는 영원한 정지화면.

그래.
과거는 영원한 정지화면.
첫사랑을 떠나 보내던 그 날의 풍경도
너를 억지로 떠나보내던 그 방의 풍경도
내게는 모두 정지화면으로 새겨져있다.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