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 이름 권정생

선생님의 유일한 인터뷰. 나릇나릇 말씀하시는 모습이 선생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선생님 젊은 시절의 모습. 젊어서 꿈도 많고 사랑도 해 보고 싶으셨다는 선생님. 가난과 병으로 모든 걸 잃은 그 삶속에서 선생은 세상을 사랑하는 기독교의 참 삶을 시작한다.

 

 선생님과 마음이 잘 맞았던 정호경 신부님. 신부님도 이제 돌아가시고 없지. 신부님도 사막의 수도자처럼 혼자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전각과 묵상을 하시며 살았다. 모두 그리운 분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 선생은 못 생기고 가난하고 병까지 얻어, 우리 기준으로는 거지처럼 살았다. 선생님을 알고나서야 나는 기독교의 정신이 가난에 있고 못남에 있음을 알았다. 예수가 집도 절도 없이 마굿간에서 태어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도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생님의 저서 우리들의 하느님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중 하나. 그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신앙고백 할 수 있었다. 그 전의 나는 탐욕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돼지였지.

선생님 자료를 찾다보니 작년에 EBS에서 이런 방송을 내보냈나 보다. 꽤나 괜찮은 영상.

 

 

값싼 은혜

본 훼퍼는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고 용서만 가르치는 것” 을 값싼 은혜라 말했다.

 

은혜가 풍성한 이 나라.

왜 값싼 신앙이 판을 치는지 알 수 있다.

 

숭고한 죽음

좁은 바위틈에 온몸을 밀어 넣고 죽은 산양 주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찾아든 곳인 듯 하다.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으며 무슨 생각했을까?
조심스럽게 수습하며 늙은 산양이 살아온 삶을 본다.
생명의 소리로 가득한 봄날 주검으로 삶을 생각한다.
https://www.facebook.com/goral217?fref=photo

박그림님 페이스북에서 이 사진을 보고 마음속으로부터 울려퍼지는 감동을 가눌 길이 없었다. 두고 두고 마음속에 잔향이 사라지지 않는 감동. 죽음 자체가 감동스럽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 나는 자신의 마지막을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이 산양의 최후에 감동을 느낀 것.

숲속에서 태어나 숲속을 거닐고 숲속 가장 깊은 곳에 자기 자신을 묻었다. 운명에 순응하고 그 운명의 거룩함을 아는 삶. 살아있다는 존엄성을 죽은 후에도 잃지 않았다. 그래 이 죽음은 숭고한 죽음.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 산양을 자기의 마지막 거처를 찾아 헤메다 자기 한몸 뉘일 알맞은 이 곳을 찾아왔겠지.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였고, 그 모습이 이렇게 숭고한 모습으로 남았다. 나도 이렇게 숭고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

미물이라 본능을 좇아 구석진 바위굴틈에 기어들어간거라 폄하할 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겠다면 그대로 생각하는게 편하겠지. 그런 사람은 평생을 그러고 사는거야. 평생을 그러고 살다 삶의 숭고함이 뭔지도 모르고 죽겠지.

생명이 기지개를 펴는 봄 날에 늙은 생명이 바위속에서 바위처럼 자연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 아름다운 삶.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속의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