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에 붙잡혀 순교한 황일광 시몬은 평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러한 신분에도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백정 출신으로 멸 시만 당하며 살다가 세례를 받게 됩니다. 황일광 시몬은 사회적 신분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같은 형 제자매로 부르는 신앙 공동체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체험합니다. – 마티아 신부님 사목이야기 95중에서
글쓴이 보관물: 늦달
폭력이 감춰진 미각
태풍피해 대민지원을 나갔다. 태풍으로 양계장이 모두 무너져버린 곳.
그곳에는 얼마전에 입식한 병아리 5만마리가 살고 있던 곳.
그 좁은 장소에서 오만마리의 병아리를 키우는 것.
냄새의 차원을 넘어서는 지독한 가스가 가득한 곳.
위생이라는 개념은 찾을 수가 없는 썩어가는 땅.
농장 입구에서부터 나뒹구는 항생제 포장지.
우리는 이런 가축을 먹으며 맛있는 육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처참한 사육환경과 도축 시설은 생각하지 않고,
예쁘게 포장되어 진열된 육류를 보며 마블링이 어떻고 육질이 어떻고,
보이지 않는 곳의 진실은 외면하고,
보이는 곳의 환상만 대면한다.
육식은 좋은 것이다.
다만 전제 조건으로 이전 우리 선조들이 가축을 대했던 방식으로 키웠을 때.
우리는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그 폭력이 얼마나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 삶 자체를 파괴하는지 알면서도 외면한다.
이런 말을 던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그럼 먹을 거 아무 것도 없어요. 자기가 다 키워서 먹어야 해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가려먹는 습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나아지고, 아이들이 아프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가 바른 음식을 먹지 않고,
폭력이 미각으로 감춰진 음식을 먹기때문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이 좀 나려고 했다.
작다고 생명의 가치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이 소녀는 그 생명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이 세계속의 작은 세계 하나를 구했다.
무당벌레 한 마리 쯤이야 ! 가 아니라,
무당벌레 한 마리가 … 되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봐도,
이 소녀의 마음에 눈물이 난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마리 무당벌레의 죽음을 두고, 한 생명의 죽음을 아파한 소녀의 마음은,
세상 그 어떤 금은보화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작은 생명이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아파하는 그 마음이
적어도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