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염치

얼마전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새끼 고양이가 차에 치여 길위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다. 차마 지나칠 수가 없어서 차를 세우고 고양이 곁으로 갔다. 그 짧은 시간에 고양이는 눈을 뜨고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니 길가에 뛰어든 고양이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사람이니까. 하지만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고양이를 길가 한 쪽 구석으로 옮겨줄 수는 없는걸까? 그건 양심의 문제까지 넘어가지 않는 염치의 문제다. 사람으로 염치가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

고양이를 거두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같은 녹생당원 분이 자기 집 감나무 밑에 잘 묻어주셨다. 밤에 그 집을 찾아가면서 눈 뜨고 죽어간 새끼 고양이가 불쌍했고, 그 새끼 곁은 떠나지 못해 옆에서 울기만 하던 어미 고양이 생각이 났다.

사람이 왜 그럴까. 사람이 왜 그럴까. 이럴 때마다 내가 사람인 것이 괴롭다.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마음이 여려서도 아니다.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도로에서 죽어가는데 그냥 지나치는 사람을 생각하면 사람으로서 염치를 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얼굴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묻어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온 삶에 대한 문제. 회사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얼굴은 노인의 얼굴. 노인의 얼굴에는 긴 세월이 묻어 있다. 그 긴 세월의 고난함을 말해주는 얼굴이 대부분이다.

가난이 사람의 정신만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육체까지 침범한다. 가난 앞에 고결한 얼굴을 지닌 사람은 어떤 면에서 위대한 사람이다. 초인과 같은 삶의 자세 없이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매일 다른 얼굴을 보며, 매일 다른 삶을 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2016년 5월의 어느 날…

생리대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여학생
지하철에 치여 세상을 떠난 19살 남자 아이.
화장실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어느 젊은 여인
바다속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가습기 튼 죄로 죽어간 죄없는 아이와 사람들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사람들의 죄는
국가를 믿은 것과 돈이 없다는 것 뿐이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넘기고
나의 짐을 대신하게 한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기분
나만 생각하고 산 죄가 이렇게 크다
내가 사람이라면 이 것을 기억하는 것을 충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