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치의 비극

[단독] 새정치연합 비주류 “16일 ‘문재인 대표 사퇴 촉구’ 공식 회견”

이 기사를 읽고 소위 비주류라는 국개의원들이 이 지랄을 당당하게 떠는 까닭을 찾아보니 92명이 답한 갤럽의 여론조사때문인 것 같다. 문재인의 호남 지지율이 5%라는 것. 이 기자회견은 문재인에게 결단을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연기되었다.

여기에 박지원은 문재인이 물러나고 비상선대를 꾸며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문재인에게 돈을 던지는 이 사람들 어디 출신 국회의원일까? 아마 대부분 호남이 지역구인 국회의원일 것이다. 지역주의가 문제일 수도 있고, 민주당 독식체제의 문제일 수도 있다. 크게 보면 반새누리 정서에 기반한 호남정치의 위기이자 저열한 수준을 보여주는 것.

자기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이 정권교체보다 중요하고 정치라는 대의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는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새정치의 꼴 같지 않은 정당 수준, 그 수준을 용인하는 호남 민심의 합작품이다. 나아가 이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치라는 가장 큰 벽이다.

이 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는 내일이 없다. 뭐 따지고 보면 오늘이라는 이 현실 자체가 내일이 없는 오직 현재진행형만 계속되고 있는 퇴행적인 사회. 누구도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 손안에 있는 사익에만 충실한다. 사익에 충실한 정치인과 그런 정치인을  뽑아주는 유권자.

소위 호남 사람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국회의원을 정치인이라고 뽑아준 저열한 수준을 말이다. 지역구조에만 의존하는 저 빈대같은 정치인이 누구를 믿고 이렇게 활개를 칠까. 정치인을 욕할 것 없다. 그런 정치를 만든 건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나와 당신이다. 자기의 책임은 잊고 정치인에게 손가락질 하고 정치의 수준을 한탄하며 자기의 책임은 간과한다. 이런 퇴행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나라 수준이 이 꼴인 것은 국민의 수준이 이 꼴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처럼 총들고 일어선 것도 아니고 뽑아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유권자다.

여당의 한심한 작태보다 더 한심한 것은 지리멸렬한 야당의 모습. 그 시작에 호남이 있다. 그것이 문제. 게다가 나는 호남 사람. 이루다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런 개 같은 현실에.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은 문재인이 자기 자리 빼앗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친노를 들먹인다. 전가의 보도 ‘친노’. 이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 때는 친노를 자처했고 그 중심에 자기가 있는 것처럼 떠벌린 작자들이 말이다.

문재인 사퇴 공판장을 돌렸을 때 거기에 서명한 국회의원 목록에 정읍 출신 유성엽 국회의원이 보인다. 내가 사는 정읍의 국회의원. 참 훌룡하신 분이다. 이런 분을 배출한 정읍이라는 이 도시의 안목도.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 사익에 충실한 사람을 정치라는 대의의 장에 내놓았을 때. 그 부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먼 산처럼 보일 뿐이지. 그렇게 먼산보듯 정치를 보면 현실은 지금의 오늘이 된다. 우리의 오늘이 왜 이렇게 좆같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이미 나와있다.

 

 

 

짧은 생각 30

*
우주의 기운과 혼이 충만하니, 풍요로운 세상이 열렸다. 후대는 이 풍요로운 세상을 어떻게 기억할까. 후대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어버렸다. 민비가 부활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던 중학교 시절. 봄은 찬바람에 터진 볼살을 따스한 봄바람이 반겨주면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바람이 아닌 달력을 보고 계절을 알아가는 서글픈 나이가 되어버렸다.

*
소개팅 나갔는데 아가씨가 내가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 그런가?

*
요즘 다시 쇼팽을 듣는다. 고음악에 심취한 후부터는 쇼팽을 거의 사지 않았는데 임동혁 음반을 듣고나면서부터 자주 듣는다. 이래저래 피아노는 나에게 있어서 뗄 수 없는 악기구나 싶다.

*
주식이 시원하게 내려가다보니 지난 달 수익은 물론이고 원금까지 시원하게 깎아드시는구나.

*
문재인이 맘에 안들어서 흔드는 족속을 보면 죄다 호남 국회의원 일색이다. 호남 사람으로 난 이게 심히 부끄럽다. 특히 내 고장 국회의원이 거기 가 있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문재인이 싫으면 재신임이라도 받아들이던가 재신임도 못하게 해 일 추진도 못하게 해. 그러면서 또 물러나래. 문재인이 못나고 못해서 그런거라면 판이라도 깔아주고 지켜볼 노릇이지. 호남 사람들 정신차려라. 그런 쓰레기 같은 국회의원 당보고 그만 찍어라.

*
우리들의 하느님이 사라진 시대. 나만의 하느님만 가득하다.

쇼팽 전주곡, 임동혁

어제 집에서 임동혁 쇼팽을 들었다. 임동혁 음악에서 사실 그동안 큰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라모폰 기사를 읽고 한 번 사봤다. 수입음반을 기다렸는데 라이센스 표지를 임동혁이 직접 골랐다고 해서 라이센스를 구입.

사람마다 음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고, 내 경우는 가장 관심있게 들어보는 것이 음색. 그래서 미켈란젤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그 연장선상에 짐머만이 있다. 건반에 대한 완벽한 컨트롤이 빚어내는 그 완벽주의를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대부분이 이 연장선상에 있다. 예술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기교라는 연장을 잘 다룰 줄 아는데서 차별성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도 하니.

이 음반을 들으며 내가 왜 임동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지 다시 깨닫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적 방향과 그냥 좀 다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임동혁 음반은 굉장히 좋았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엄격한 전주곡 음악과 비교하니 새삼 더 와닿은 것도 있고.

자유롭기 보다 안으로 파고들어갔고 엄격하기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다. 이게 뭔 잡소리인가 싶지만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루바토속에서도 악보에 충실한 것이 느껴졌고 무엇하나 튀는 구석 없이도 음악이 새로웠다. 아르헤리치보다는 루빈스타인이 떠오른다.

그동안 맘고생이 좀 많았던 것 같은데, 고통이주는 성장통을 잘 이겨낸 모양이다. 누구나 연주하는 이 쇼팽 음악중 이렇게 자신있게 남에게 추천 할 수 있는 음반도 많지 않다. 폴리니나 소콜로프 같은 초인적인 연주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다.

이제 서른 두살의 피아니스트가 쇼팽 전주곡을 이렇게 연주 할 수 있다니… 폴리니가 떠오른다. 방향은 다르지만. 다시 한번 듣고 다시 글을 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