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너의 이름은 계절의 여왕. 나에게는. 지금 이 계절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서 있는, 그래서 두 계절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계절이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그 맹렬한 더위과 습도는 견디기 힘들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서러운 계절. 지금 이 계절은 견딜만하고 서럽지도 않다. 신록은 아직은 푸르르고 사방에 빛나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렇게 지내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한낮의 더위도 저녁의 선선한 바람에 누그러진다. 조화로운 계절.

가을은 줄어든 일조량의 직격탄을 맞는 계절.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겨울의 입구에 서 있다. 겨울은 겨울잠을 부르는 계절. 하느님이 우리에게 겨울잠을 주셨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텐데… 겨울 두달만 사람이 사라져도 세상은 말도 못하게 나아질거야. 암…

피아노

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집안에 아무도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데 나만 음악을 좋아했다. 그걸보면 뭔가를 좋아하는 것은 타고 나는 듯.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는 음악에 심취해서 온 종일 음악만 생각하고 지낸 적도 많았다. 이 열병을 20대까지 앓았는데 덕분에 나는 졸업이라는 단어와 20대 시절에는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피아노는 마음 가장 가까이 다가온 악기. 내가 서투르지만 연주도 할 수 있었고 기억 가장 첫부분에 저장된 곡도 피아노 소품집.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피아노 음악을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도 사랑하고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도 즐거워한다. 비록 초보적인 수준의 연주에 지나지 않지만 스스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것도 드물다.

1년에 한번은 이사를 해야 하는 보따리 삶에서 피아노를 산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전세라도 집을 얻고 난 후에는 소음때문에 키보드를 연주 할 수 밖에 없었고. 비로소 내 집이 생기고 나니 피아노를 들일 수 있었다. 저 검은 자태의 피아노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다. 음반으로 듣던 그 피아노 음색은 아니지. 하지만 연주하고 있다보면 연주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만족을 준다.

내가 직장을 갖고 돈을 벌면서 가장 잘한 일이 피아노를 산 것이고,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지금으로 집으로 이사한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일.

바라는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삶을 살아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지만, 피아노는 순간이나마 나의 갈증을 달래준다.

 

이오덕의 일기를 읽다보니 

19살부터 교사로 살았던 30대 중반의 이오덕을 만나게 된다. 지금 내 나이즘이지. 교사라는 삶의 직분에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일기를 읽지 않았다면 그의 괴로움을 이렇게 알 수 있었을까.

깨어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자 그는 늘 고민했고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가르쳤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다. 그래서 그가 평생 꿈을 꾸며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권정생은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 하루 원고지 한장 쓰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의 삶에서 일기까지 쓰는 것은 무리였던 것. 그런 권정생의 속내는 이오덕과 주고 받은 편지속에서 볼 수 있다. 권정생은 자신의 속내가 온전히 드러나는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권정생에게 이오덕에게 보내는 편지는 몰아쓰는 자신의 일기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밀한 독백인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사람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