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약해진 것인가?


그래 그건 맞다.
예전과 같은 섭씨 40도의 믿음은 사라지고 없다.
이런 나의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서 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예전에 믿음이 충만한 나였다면 티벳 고원을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이들을 보며
우상에 빠진 무지몽매한 이로 봤을지 모른다.

지금의 나의 믿음에서 그들을 보니
그 숭고한 믿음에 진심으로 경의로 표하고 보다보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나는 그들이 가진 그런 순수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쪽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손가락 질 하는 것이
종교의 한 단면에서 보자면 옳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종교의 온 단면으로 보자면 그건 옳지 않은 것이고,
종교를 떠나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항상 옳다.

내가 가진 이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 자를 손가락 질 하는 종교도 아니고
예수천국 불신 지옥이 떠 받쳐지는 종교도 아니다.
종교가 같던 다르 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가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다.
나는 그저 하느님 앞에 작은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바란다.

나는 감히 하느님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주제도 되지 못하고
그건 우리들의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상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와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더 겸손해져야 하고
낮아져야 한다.
왜냐면 나는 아직도 교만하고 나태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다른 누구를 정죄하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함


엄마떠나고 마음속에 답답함이 생겼다
뭘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 마음속 답답함
크게 한숨을 들이쉬어도 답답하다
아직도 꿈속에서 자주 엄마를 본다
뭘 사들여도
뭘 즐겨도
뭘 해도
답답하다
마음이 답답하니 얼굴 인상도 답답해진다
내장산에 집을 짓고 엄마곁에 살면 나아질까
마음속에 가득한 이 답답함.
산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다

피레스의 쇼팽을 듣는 밤


쇼팽은 역시 밤이지.얼마만에 책상에 앉아 음악을 듣고 블로그에 글을 써 보는지 모르겠다. 직장이라는 곳에 얽매이다 보니 생각의 범위도 자유도 내가 원했던 방향과는 거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금융자본주의에 분노했지만 그곳에 기생해 밥을 먹고 살아간다. 이것이 옳은 삶인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곳을 박차고 뛰어나갈 용기도 기개도 이제는 다 사라진 것 같다.

신영복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한 개인이 극한상황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을 성찰하고 내적혁명을 이뤄가는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정체된 곳에서 살아 숨쉬는 한 사람의 긴 호흡이 얼마나 치열하고 보이지 않는 한 세계를 이처럼 심오하게 만들었는지… 읽는 내내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다시 내가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언제나 마음속에 움틀거리고 있는, 이제는 생각이 아니라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 나는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제는 작은 내 집도 있고 가진 것이 많아졌는데 행복이라는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숨이 길게 나오는 밤이다.

언제 새벽에 깨어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의 나, 나는 새벽의 그 세상을 눌러 정적을 지배하던 그 새벽의 기운을 참 좋아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 할 수 있었던 섬세함도 갖고 있었고, 동이 트기 전의 그 깊은 어둠 또한 사랑했었다. 이제는 새벽은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 내일이라는 부담의 벽이 나와 새벽 사이에 둘러쳐졌다. 그 벽을 넘고 새벽의 그 땅에 발을 내딛는 것이 내일라는 부담을 이겨내는 용기가 되어버린 지금.

오랜만에 쇼팽을 듣는다. 쇼팽은 역시 밤에 제격이다. 밤이 더 깊어지고 서리가 내릴 때 즈음 더욱 쇼팽은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음악이 된다. 피레스의 쇼팽 음반을 듣다보니 모라벡의 부서져 사라질 것 같은 터치감이 없이도 이렇게 섬세한 음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균형감 있고 템포도 그 속에서 자유롭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이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대단한 피아니스트인지 새삼 감탄하는 밤. 오랜만에 쇼팽 음악을 듣고, 또 그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