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푸스여사 재발매 음반

드레푸스 여사의 영국모음곡을 듣고 있자니 제성이형 지적대로 악기선택이 두고두고 아쉽네.

데논음반에서 들었던 그 빛나는 음색이 많이 퇴색된 느낌.

훌륭한 목수는 연장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연주자에게 악기는 연장이 아니라 연주자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명연주자들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악기지니고 있었다. 피아노처럼 태생적으로 운반이 어려운 악기까지도 짊어지고 다닌 연주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만큼 악기는 연주자에게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아직도 피아노를 싸들고 다니는 짐머만이 난 이해가 돼.
그 모습이 또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만큼 악기를 소중히 여기기에 연주도 그렇게 대단한거다.

 

 

 

 

 

사랑의 교회 단상

사랑의 교회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 동안 전임 목사님 아래에서는 은혜가 충만했는데 교회가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탄식하는 신실한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이 틀렀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목사를 후임으로 내정한 것도 전임 목사님이고 강남의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것도 전임목사님이다.

단언컨데 세상에 성서적인 대형교회는 없다. 큰 교회가 어떻게 성서적일 수 있는가. 대형마트가 소상공인과 공존의 상대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형제자매라고 부르면서 누가 우리 교회 형제자매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많고 규모가 크다보니 작은 교회보다 더 나은 점은 많겠지. 하지만 그게 신앙과 무슨 상관인가. 신앙은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하루보고 한번보는 관계가 아니라 꾸준함속에서 성장하는 관계.

그 관계가 어떻게 규모속에서 성장 할 수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큰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나의 하느님에 젖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사라지고 나의 하느님이 가득한 세상에 평화가 발붙일 곳이 있을까.

신앙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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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사 여직원 분이 왜 성당에 다니냐고 물었다.
딱히 뭐라 답하기 어려웠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신앙은 함께 살기 위해서 갖는 거고,
함께 살기 위해서 성당에 나간다.
함께라는 것은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하지 않는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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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밤에 깨는 일이 많아, 이 시간에도 깨어있을 때가 많다.
꿈을 1년에 한두 번도 꾸지 않는 사람인데,
요즘은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거의 매일 꿈에서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가 떠오르고
매일 꿈속에서 울고 자다가 운다.

엄마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늘 기도한다.
그것이 나의 남은 삶의 큰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