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효과

웨이트 트레이닝은 운동을 마치고 나서도 올라간 체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달궈진 돌처럼. 운동을 하지 않은 날과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점. 저녁에 운동을 하고 자면 아침에도 평소보다 체온이 높다고 느껴진다. 느낌이라고 하는 까닭은 체온을 재보지 않았기 때문.

요즘 같은 계절, 운동을 하지 않고 자는 날은 온수매트를 좀 틀어줘야 따뜻하게 잔다는 기분이 드는데, 운동을 한 날은 온수매트를 틀 수가 없다. 더워서. 그냥 이불만 덥고 자도 따뜻하게 잠들 수 있다. 체온은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니 운동을 하면 신체가 활성화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것을 먹어봐도 운동만큼 몸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 잘먹어 병이 생기는 시대에 뭔가를 먹어서 몸이 좋아진다는 것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사기. 그런면에서 보양식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운동이 이렇게 좋지만 슬픈 것은 내 몸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 몸은 더 불어났지만, 한 번다치면 이제 잘 낫지 않는다. 근육이 습관적으로 뭉치는 것은 예사고, 운동 시간대를 잘 맞춰야만 숙면에 들 수 있다. 예전처럼 아무 때나 운동 할 수 없는 것. 유연성과 탄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근력은 아직은 괜찮지만, 신경계과 관련된 모든 몸의 기능들이 다 퇴화하고 있다. 그것을 느끼며 운동하는 것이 조금은 슬픈 일.

 

 

 

 

사드

난 사드는 반대하는 편임

애초 들이지 말았어야 함

그런데 북핵 한미동맹 이라는 변수로 이제 물리지도 못함

사드가 우리를 방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임

사드로 미사일 방어한다는 사람들은 바보임

그런데 한미동맹이라는 현실속에서

북한의 저 미친짓으로부터 동맹국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사정이 달라짐

사드의 성능에 대한 의심은 별개로

동맹국의 안보를 위한다는 모양새는 매우 중요

지금 상황은 이 모양새에 근거가 하나 하나 늘어가고 있음
북한의 요구 조건이 비교적 용이했던 오바마 시절

미국이 좀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냥 아예 관심이 없었지

지금 북한의 요구 사항을 보면 불가능한 조건을 열거한다
강대강 구도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이걸 무시하고 대화 평화 운운하면 길을 더 꼬인다
핵과 미사일의 기회비용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북한도 앞으로 걱정이라도 한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국내 선전의 한계가 북한 자국민 내부에 와 닿아야

핵과 미사일 억지력이 생긴다

핵과 미사일 억지력은 유엔 결의안에 담긴 것이 아니라

미안한 말이지만 인민의 밥상에 달렸다
대화는 늘 해야하지만

행동에 대한 비용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그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용서

회개는 신이 용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신도 회개하지 않는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전병욱은 스스로 용서받았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상당수 기독교인이 이런 삶을 산다. 하느님이 용서하셨으니 나는 이제 새사람.

하느님의 용서에는 구별이 없고 차별이 없다. 아무리 큰 죄도 회개 앞에 용서받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것이 인간과 비교되는 신의 자비이고 사랑이다.

그 용서는 누군가에게 써준 차용증을 소각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전과 이후를 구별하고 어둠과 빛을 구별하는 신의 사랑이다. 그렇게 때문에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 받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야하는 삶의 강제가 아닌,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예외가 있다면 전병욱 목사 같은 사람. 이신칭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인데, 전병욱은 스스로 의롭다 함을 칭하는 자칭칭의자가 되었다. 이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듯. 기독교를 스스로의 의로움과 용서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이 사람에게 신의 용서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