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녹색평론

권정생 선생님을 알면서 녹색평론을 알았고 녹색평론을 알면서 녹색당을 알았다. 정읍에도 녹색평론 독서모임이 생기고 녹색당 지부가 생겨나면서부터 점점 나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간다.

세상 뚝 떨어진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고, 세상에 이렇게 숨은 의인이 진짜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이 줄 수 없는 그 고귀한 품격이 담긴 얼굴을 볼 때면 얼굴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는지 새삼 깨닫는다. 어른의 얼굴은 그의 지난 삶이다. 가난과 함께 살면서 가난이 범접하지 못하는 고귀함을 품은 삶.

하느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숨은 의인은 이렇게 숨어 세상을 구원한다.

 

사람, 염치

얼마전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새끼 고양이가 차에 치여 길위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다. 차마 지나칠 수가 없어서 차를 세우고 고양이 곁으로 갔다. 그 짧은 시간에 고양이는 눈을 뜨고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니 길가에 뛰어든 고양이를 피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사람이니까. 하지만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고양이를 길가 한 쪽 구석으로 옮겨줄 수는 없는걸까? 그건 양심의 문제까지 넘어가지 않는 염치의 문제다. 사람으로 염치가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

고양이를 거두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같은 녹생당원 분이 자기 집 감나무 밑에 잘 묻어주셨다. 밤에 그 집을 찾아가면서 눈 뜨고 죽어간 새끼 고양이가 불쌍했고, 그 새끼 곁은 떠나지 못해 옆에서 울기만 하던 어미 고양이 생각이 났다.

사람이 왜 그럴까. 사람이 왜 그럴까. 이럴 때마다 내가 사람인 것이 괴롭다.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마음이 여려서도 아니다.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도로에서 죽어가는데 그냥 지나치는 사람을 생각하면 사람으로서 염치를 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