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의 소리는 오늘의 팔락거리는 등잔입니다

씨알의 소리는 오늘의 팔락거리는 등잔입니다. 모진 바람 불고 사나운 짐승 날뛰는 어두운 골짝에 초막 하나를 지켜가는 것은 결코 큰 돈이라 권력이 아닙니다. 호롱불 하나 때문입니다. 씨알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로 이 시대의 호롱에 기름을 대십시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이 등잔을 꺼서는 아니됩니다. – 날고도 새로운 계명 씨알의 소리 1975. 9

4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이 사회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인 거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권리는 어른이 누리고
그 책임은 아이들이 짊어진다.
염치없는 어른들의 사회.

짧은 생각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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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저출산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위기감.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헤메는 이때에. 정치는 정지해 있고 통치는 혼을 찾고 있다. 토머스 하디 그의 시 ‘뭇나라의 괴멸’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네 삶은 이어진다고 노래한다. 문제는 그 삶이 단지 이어질 뿐이라는 거지. 어떻게 살든. 사회의 부는 크게 늘어났지만 가난이 화두인 이상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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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탈당 할 것같은 기개는 사라지고 시민의 뜻을 묻는단다. 누구냐고, 내가 사는 곳 정읍 국회의원이라는 분의 말씀이다. 이 지역의 기개가 이 정도밖에 안되었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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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일 신문을 보니 문재인, 안철수 양비론이 도배를 한다. 허허. 떼 쓴놈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호남의 민심이 안철수라면 이 지역도 별수 없는거지. 그냥 정신승리에 만족하는 거. 광주의 아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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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 무조건 피곤. 업무강도가 센 것도 아닌데, 회사만 가면 일이 많아도 없어도 피곤. 지쳐 퇴근하면 집에서는 손가락도 움직이기가 싫다. 그래서 티비 채널도 잘 안바꾼다. 그러더 거실서 잠들고… 도무지 뭘 해야 하는데 기운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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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자는 약을 발명한다면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이다. 북반구의 인류가 겨울 3개월 동안 사라진다면 세상은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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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전에 치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1,3번을 다시 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세상이 열리니 못구하는 악보가 없다. 3번은 그 유명한 달빛, 베토벤의 달빛은 피아노가 흐느끼며 우는 느낌이고 드뷔시의 달빛은 한여름 밤의 몽환적인 분위기. 이 곡을 참 좋아한다. 난이도도 그렇게 높은 곡은 아닌데, 표제와 다른 음악이 나와서 당황스럽다. 표제는 달빛인데 표현은 황당이다.

조지 오웰을 읽으며

잠들기 전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는다. 나는 왜 쓰는가. 책의 제목이며 책속에 나온 자전적인 에세이의 제목이다. 오웰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감지한 것처럼 운명이었다. 그렇다고 어려서부터 비범한 재능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재주가 있는 정도?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똑똑한 탓에 이튼에 입학하게 되고 졸업후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대신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생활을 5년동안 경험한다. 그리고 귀국해 노숙자 생활, 르포 탐사,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하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오웰은 작가로서 갖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체화하게 된다. 그것은 현상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성찰이다. 오웰의 문체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큰 매력이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오웰이 거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을 뿐더러, 오웰 스스로가 언급한 것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추구한데서 찾을 수 있다.

오웰 스스로가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추구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맞물려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식민지, 세계 1,2차 대전의 한 복판에 놓여있었다. 발전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 폭력이 양산한 시대의 모순. 어찌보면 그 시대는20세기 최고의 격동의 시기였다. 그런 시대를 살며 냉철한 시각으로 시대를 읽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대의 그 유명한 작가 명사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하려 한다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기자 라디오 피디 활동중에도 오웰은 굉장히 많은 에세이를 썼다. 사실 오웰 문학의 정수는 동물농장이나 1984보다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먹고 살기위해서, 또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여러 이유로 오웰은 글을 썼다. 오웰은 자신이 쓴 에세이들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당위성을 찾고자 했다. 잡문으로 비하되는 이 장르에 대한 자신의 자부심도 묻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과정인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한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그래서 오웰은 스스로에게 대중에게 솔직하고자 했다. 그의 글에는 냉소와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지금도 틀리지 않는 그의 정확한 시선. 그의 칼이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함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깨어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이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오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