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날벼락이 내려 바이러스성 피부 발작이 일어나 온몸이 발진이 일어나더니 얼굴까지 번져 빨간얼굴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일주일이면 낫는다는데 괴롭구나
십수년만에 감기도 걸리고
이런 피부질환도 앓고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보다

등에도 약을 발라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는다
영화 랍스터의 콜린 파렐이 떠올랐다
그도 등의 피부병때문에 약을 바르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제 깨닫으니
사람은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야 한다는 은유였다
랍스터가 되기 싫으면…

시골의사 박경철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의사라는 본업보다 주식투자로 성공한 경제전문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어려서부터 방대한 독서량으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았고 본업인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도 얼치기 경제 전문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분. 모두가 환호 할 때 버블을 경고했고, 모두가 두려워 할 때 투자를 권했던 버핏과 같은 현인?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개인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런 성취를 바탕으로 티비에 자주 등장하며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설파하고 안철수와 함께 토크 콘서트로 온 국민의 열망을 받았던 그런 분. 그 때 만해도 안철수는 새정치의 상징이고 이 분은 젊은이의 멘토로 새로운 세상을 열 것만 같았다.

정치에 입문한 후 안철수의 말도 안되는 행보속에 이분의 입김이 강하게 묻어난다는 풍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안철수의 행보는 안드로메다로 가기 시작한다. 급기하는 새정치라는 이름의 땡깡정치 열게 된다.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제재,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주장하더니 얼마 뒤에는 5대 중범죄만 아니면 누구나 출마가 가능한 오픈프라이머리에 사인을 한다. 왜냐고 물으니 혁신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혁신의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더니 싫다고. 추천을 해달라고 하니 묵묵부답. 이제는 더 나아가 새정치를 넘는 혁신정치를 추구하신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선출된 정당한 대표도 혁신 전대로 다시 뽑아야 하고, 혁신정치를 위해서는 호남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행보를 보인다. 말은 없지만 행보는 호남당으로의 회귀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광주에 가셔서 기자회견을 하신다. 혁신 정치, 혁신 후보, 혁신 전대… 혁신의 혁신을 보이는 정치를 열어놓는다.

안철수와 같이 정치를 시작한 사람중, 지금 안철수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윤여준은 결국 안철수에게 악담을 퍼 붙고 떠났고, 금태섭 변호사는 소위 안철수 캠프라는 곳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 얼마나 답답했는지 책에다 써놓았다.

그런데 떠나는 사람의 입에는 늘 시골의사가 따라다닌다. 이것이 우연일까? 국회의원 100명으로 줄이자는 이 희대의 발상이 시골의사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말이 들린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만권의 독서를 통해서 쌓아올렸다는 그의 성찰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1만여권의 책과 함께한 그 긴 시간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정치의 개혁을 위해서는 민의가 반영되는 선거구제의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해방 당시시 인구수에 맞춰 선출한 국회의원수를 시대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이 순리다. 민의의 왜곡이 불러일으킨 정치의 기형화, 그 기형화에 지역구도는 안주하고 분산되지 않는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서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기존의 구조에 안주하려 한다. 이것이 호남정치로 대변되는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의 비열한 사고방식이다.

조금만 시대를 읽고 생각을 펼쳐놓으면 국회의원 수를 늘려 권력을 분산하고 그 권력의 분산만큼 비용 또한 같이 절감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해하게 된다. 권력의 독점이 낳은 폐해의 본질, 그 본질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이 1만권의 책으로 쌓여올려졌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허무한 노릇인가. 시골의사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경제적인 혜안 또한 정치의 본질과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들게된다. 성공한 사업가 안철수 문국현이 가져 다 준 야당의 시련을 봐도, 또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지만 성공으로 포장하여 거대한 사기를 친 이명박을 봐도. 이런 과정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사업가는 정치인이 되면 안된다. 경제논리는 정치라는 거대한 삶의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쇼팽 발라드 1번

내가 이 곡을 처음 연주하려고 결심한 것이 스물 셋, 그때는 집에서 공익을 다닐 때라 퇴근하고 하루에 한시간씩 연습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연주한 횟수만 치면 수천번은 넘겠지만, 이지 리스닝 곡이나 치는 수준에 감당 할 수 없는 곡. 우여곡절 끝에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는 하는데 다른 곡이 나와버린다. 그러다 집을 떠나 13년만에 다시 이곡을 접하면서 여러가지 느낀다.

레슨을 받으면서 이 곡의 구조적인 특징과 그 미묘한 화성들의 연결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레슨을 받아야만 알 수 있는 그런 세계.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해서 연주하며 멜로디 라인의 연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고 왼손 반주가 왜 중요한지 왼손만 연주하며 깨닫았다. 왼손만 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선율이 오른손과 만나 화성을 이루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하나 하나 알아가며 쇼팽이라는 작곡가가 왜 대단한지 요즘 다시 생각하고 있다.

발라드 1번을 두고 슈만은 쇼팽을 4곡의 발라드 중에서 제일이라고 평했다. 나도 역시 발라드 1번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니 이 대곡을 치고 싶다는 욕구에 무모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고.

나는 발라드 1번이 하나의 서사시와 같은 극적인 전개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도입부의 담대한 전개는 이 서사시의 1연이다. 서사시에 어울리는 선율과 전개과정. 발라드 1번의 전개과정은 그렇다. 그런측면에서 미켈란젤리가 테스트먼트에서 50년대 녹음한 모노 녹음은 이런 전개과정에 가장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엄격한 템포와 뻣뻣하게 느껴지는 선율전개는 오히려 이 곡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페라이어의 시정이 넘치는 도입부나 완벽주의가 느껴지는 짐머만의 연주도 물론 좋지만…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발라드 1번을 연주 한 것도 이런 서사적 구조가 갖는 극적인 면을 고려한 의도적인 선곡이 분명하다. 생사의 기로에서 녹턴을 연주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폴로네이즈를 연주하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닌가.

담담한 도입부과 절정을 향해서 서서히 치닫는 전개부 화려하고 극적인 절정을 지나 다시 담대하게 마무리 짓는다. 코다를 향해서 맹렬하게 상승하다 담대하게 마무리 짓는 순간. 장렬하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이 곡은 내가 모든 피아노 곡을 통틀어 가장 잘 알 수 밖에 없는 것이 악보는 수 없이 봤고 연주도 몇 번 해보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위대하신 영도자 전 가카처럼 내가 해봐서 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악보를 본다는 개념보다는 연구한다는 마음을 갖고 악보를 다시 보고 있으니. 틀린 계이름을 정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행간에 숨겨진 작곡가의 악상기호도 유심히 보고 그 의도를 알고 싶어한다.

요즘 레슨을 받으면서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전통이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은 그 긴 세월동안 눈과 눈 귀과 귀 그리고 양 팔과 온 몸이 기억하는 삶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배웠던 교수님 그 교수님이 배웠던 교수님. 이렇게 꼬리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어느 새 쇼팽이 살던 시대의 쇼팽과 마주하게 된다. 이 생각을 하게 되면 감격이라는 말이 적합한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미약한 끈을 통해 이 위대한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예술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예술지상주의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서 사람이 구원 받을 힘을 얻는다 믿는다. 스필만이 달빛이 내리는 그 폐허의 전쟁 한 복판에서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그 순간. 유대인과 독일군의 차이는 사라지고 쇼팽이라는 위대한 전통이 이어주는 두 사람만 남는다. 먹고 사는 것의 위대함만큼이나 예술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