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예수의 사랑’을 모독하지 말라

가끔 야신이 생각이 난다.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인 그를 한 때는 나도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테러리스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난 야신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마스의 방식을 내가 동조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마스의 민간인을 상대로 한 자살폭탄 공격은 물론 반대하고 그것이 테러라는 것은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하마스가 정말 이스라엘과 상대하고자 한다면 민간인이 아닌 이스라엘의 공권력에 투쟁을 집중해야 한다. 죽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이스라엘에 손에 죽는 것이 그네들이 말하는 순교가 된다.

이 글을 한겨레에 보내고 야신은 3개월 후에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로켓 공격으로 사망한다. 전신마비로 휠체어도 못 끄는 이 노인이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야신은 영원한 삶을 얻었다. 야신은 하마스 내부에서도 굉장히 온건파였고, 강건파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권위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죽였으니 이스라엘도 제정신이 아닌거고, 그네들이 진짜 테러리스트라는 증거다.

오늘 날 이스라엘이 깡패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견이 없을 줄 믿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독립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었고,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간접적으로 이해가 된다. 야신이 죽고나서 팔레스타인에서의 긴장은 더욱 높아져갔고, 결국에 얼마전의 대학살을 낳았다.

야신의 바램대로 평화가 올 수 있을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더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같다. 그래서 남의 것을 뺏어야 하고 더 크게 뺏기 위해 전쟁을 잃으킨다. 결국 평화는 인간 머리속에서만 존재하는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중동에서의 평화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득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취하고 실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피로써 돌려받을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영원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병 석에 누워 있는 하마스(HAMAS · 이슬람저항운동) 지도자 아흐마드 야신(Ahmad Yasin)이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한겨레21>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재 팔레스타인 전역을 장악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도자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메시지는 매우 어려운 경로를 거쳐 전달되었다. – 편집자

가장 자비롭고 인정 많은 알라의 이름으로, “기쁜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 모든 형제들에게!”. 저는 인류의 선과 행복과 자비와 사랑을 존중하는 무슬림으로서, 이 거룩하고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모든 크리스천 형제들과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 인사를 올립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알라의 뜻에 따라, 인류를 어둠에서 광명으로 이끈 예언자 알라의 뜻에 따라 저는 이 크리스마스 축하 메시지를 바칩니다.

유대-기독교로부터 침략당한 사람들

저는 이 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통해 이 세상 모든 형제들이 정의와 평화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며 자비로운 지저스 크라이스트 가르침 앞에 모두 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설파하신 정의와 평화는 한몸이며, 모든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어야 할 이 날, 눈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왜곡당한 정의와 평화 아래 신음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형제들입니다. 까닭 없이 짓밟혀온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되돌아보는 일로 세상 모든 형제들이 2003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가슴에 담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 메시지에 올립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가는 당신의 형제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대-기독교로부터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할 수 있는 ‘무제한’ 권리를 주면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총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굴종을 명령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년간 살아온 땅에 느닷없이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고 정착하도록 만드는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나 의지는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로부터 이주 유대인 인구는 날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본디 그 땅의 주인이고 대대로 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제공한 신식 무기를 쏘아대는 유대인들에게 무차별로 살해당했습니다.


결국 1948년 팔레스타인 땅은 크리스천 영국 식민주의자들 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내건 유대 침략자의 손으로 다시 넘겨졌고, 수천년간 무기라고는 농사용 칼밖에 없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탱크와 전투기 앞에 날마다 학살당하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를 뽑아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는 500만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이어 1967년 이스라엘은 가자와 서안을 비롯한 모든 팔레스타인 영토를 무력 침공해서 그나마 남아 있던 400만명을 웃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마저 마음껏 지배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렇게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를 사주해 무슬림의 땅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기독교로부터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독립 의지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테러리스트’라는 더러운 호칭


이렇게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외치는 건 ‘복수’를 위해서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도 결코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쫓겨난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모두 무사히 어버이의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서 옛날처럼 평화롭게 함께 살겠다는, 사람이 지닌 가장 소박한 의지일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형제들은 세상 누구에게도 온전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고, 세상은 늘 힘 센쪽 손만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결국 팔레스타인 형제들은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정당한 권리를 스스로 되찾을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 앞에 회한의 눈물을 흘린 뒤, 하나둘씩 일어났습니다. 어버이와 자매형제들이 학살당한 기억 앞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렇게 하나둘씩 일어섰습니다.


형제 여러분이 ‘테러리스트’로 익히 알고 있을 하마스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땅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인 자유를 되찾기 위해 1987년 12월14일, 그 깃발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하마스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일치된 합법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과 유럽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제사회는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침공해서 늙은이·어린이·여성 가름 없이 무차별 공격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이스라엘 침략자들에게는 ‘평화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리면서. 굶주려 쓰러지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횡한 눈동자를 무시한 채 이스라엘 침략자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해서 ‘살인 면허장’을 쥐어주면서. 팔레스타인과 함께 대대로 살아온 나무들을 뽑아내고 그 땅에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 이스라엘 침략자들에게는 등을 두드려주면서.


그렇게 정당한 자유와 독립을 외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테러리스트’란 더러운 이름을 달아놓았습니다.


크리스천 형제 여러분, 한국과 아시아 형제 여러분, 과연 이게 미국과 유럽이 외쳐온 자유와 인권입니까? 이게 국제사회가 법으로 규정한 자유와 인권입니까?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크리스천 형제 여러분, 한국과 아시아 형제 여러분, 과연 이게 평화의 심부름꾼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가르친 정의와 사랑입니까, 인류애입니까?


형제 여러분, 저와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사람이기를 외치며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부디 우리 팔레스타인 형제들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그렇게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머지않아 팔레스타인 형제들은 ‘정의’의 가치를 이 세상 모든 형제들에게 되돌려드리면서 그 은혜를 갚을 것이라는 걸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모든 형제들에게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함께 멋진 새해가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2003년12월11일 제488호 (한겨레 21)

[팔레스타인] ‘예수의 사랑’을 모독하지 말라”에 대한 2개의 생각

  1. 힘이 정의를 어떤 식으로 뭉개버리는지 가장 단적인 예가 팔레스타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대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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